▲넷플릭스의 4부작 다큐 <트럼프 : 언 아케리칸 드림>.
넷플릭스
누구보다 세게 악수를 한다. 고급 수트에 빨간 넥타이도 그대로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팩트가 아니라고 기자들을 몰아세우는 것도 똑같다. "지는 걸 못 참는" 성정도, "나 말고 최고는 없다"와 같은 자신감도 그때나 지금이나 같았다. 훗날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도날드 트럼프의 첫 번째 전성기 시절, 30대 초중반을 지나던 젊은 날의 트럼프는 지금과 별다른 게 없어 보였다.
"진짜 트럼프는 누구이며,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지?"를 묻는 넷플릭스(와 함께 영국의 채널4)가 만든 <트럼프 : 언 아메리칸 드림>(이 다큐는 향후 한 편씩 소개할 예정이다)은 "도널드 트럼프의 50년 지기 친구와 그의 적들"과 그를 지근에서 본 지인들, 기자·작가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4부작 다큐멘터리다. 더불어 미디어를 이용하는 데 '천재'였던 "홍보의 달인"이자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난 트럼프의 방송 인터뷰가 종종 화면을 채운다.
1970년대 중후반,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 부동산 개발을 천직으로 삼았던 젊은 날의 트럼프의 이상은 '더 크고, 더 화려하게'였다. 낡았던 코모도 호텔을 그랜드 하얏트로 리모델링하면서 '세기의 세금 거래'를 성사시킨 트럼프는 장사꾼 기질이 다분했다. 최악의 시기를 거쳤던 뉴욕시로부터 40년 간 세금 감면 혜택을 승인 받고, 훗날 후임 시장과의 소송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트럼프 재단'은 물론 트럼프라는 브랜드의 초석이 될 '트럼프 타워'를 세운 것도 그 즈음이었다. "경기가 나빠지면 나는 원하는 걸 다 얻는다"라던 그는 "타고난 장사꾼"이란 평판 아래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재산을 다 잃으면 무얼 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에 출마할까요?"라며 웃었던 30대의 트럼프는 "농담"이라고 눙치면서도 "나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것만은 확실"하다던 자신만만한 남자였다.
"전 (세상이) 기본적으로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전 게임을 하려고 온 것뿐이고요. 게임에 서툰 사람들도 분명 있어요. 세상은 좋은 본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죠.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주로 경쟁심이 강하고 의욕적이고 이기고자 하는 본능이 있어요."첫 번째 전성기로부터 40여 년 뒤 세계 최고의 권력을 지닌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역시나 인생의 첫 번째 전성기를 만난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세기의 담판'을 지었다. 공히 아버지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두 사람. 그들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싱가포르에서 만났고, '홍보의 달인'인 트럼프는 여지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정은의 말을 빌리자면 "공상 과학 영화"처럼 느껴지는,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바라보며 거둘 수 없는 의심은 바로 거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를 수십 년간 반복적으로 '거래의 달인'이라 포장해온 트럼프가 아무런 이득 없이 북한과의 '빅딜'에 응하고 합의서에 사인을 했을까. 답은 '노'다. 그럴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소시오패스' '관심종자'의 손에 달린 한반도 운명? "도널드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세상은 포식자와 피식자로 나뉩니다. 흑 아니면 백이에요. 포식자가 되지 못하면 희생된다는 거죠. 그의 세계관이요? 무가치하죠. 어떤 가치도 없어요. 저는 그를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했어요. 양심도 없고,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알지 못해요."
트럼프의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을 직접 썼다는 '고스트라이터'는 도널드 트럼프의 세계관을 이렇게 정의했다. 책을 쓰는 동안 트럼프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이 대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아주 원시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소유자다. 트럼프 역시 본능적으로 "실패보다는 성공"에 끌린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그런 그가 작년까지만 해도 '핵 버튼' 운운하며 적대감을 표출해왔던 북한과의, 김정은 위원장의 거래에 어떻게 임했을까. 과연 득보다 실이 많았다면 합의서에 서명을 했을까. 트럼프의 철학 중 또 하나는 "누가 날 엿 먹이면 반드시 배로 갚아준다"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단순하지만 즉물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의 소유자인 트럼프가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북미정상회담 결과 기자회견 장면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는 한참이나 어린, 그리고 격이 한참이나 떨어진다고 생각할지 모를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서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 포화가 쏟아진 가운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쇼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한국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쇼맨십'의 달인이자, 방송 진행자 출신이며,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거의 직업처럼 삼아온 셀러브리티형 대통령이다. 기대를 모았던 남북미 정상회담은커녕 김정은과의 포토타임은 짧게 끝낸 채 이목이 집중됐던 기자회견을 독차지한 셈이 됐다. 세계의 이목은 물론이요 정상회담에서 취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실리는 충분히 챙긴 셈이 됐다. 그렇다면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합의문과 달리 기자회견 내용은 어땠나.
달라진 트럼프, 북을 옹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