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함정'에 빠진 안철수, 그가 진짜 놓친 것

[주장] 양쪽 진영 지지 얻는데 실패...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야

등록 2018.06.18 10:26수정 2018.06.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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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지방선거 캠프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지방선거 캠프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이희훈

그는 다시 기로에 섰다. 벌써 세 번째 맛보는 쓰라린 경험이다. 그동안 몸 담았던 곳에서 늘 승승장구해 왔던 그에게는 좀처럼 익숙지 않은 낯설음이다. 의사로서, IT전문가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의 멘토로서 눈부신 업적을 쌓아왔던 그이기에 이 상황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기는 했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대선보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맥없이 고꾸라졌다. 그것도 자신이 사퇴를 종용했던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게도 뒤쳐진 3등이다. 곳곳에서 조소와 냉소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정계은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에게 서울시장 출마는 퇴로가 없는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선 패배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등판한 선거가 아닌가. 게다가 상대는 7년 전 그가 통 크게 양보를 했주었던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밀려날 수도 밀려서도 안 되는 진검 승부였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차기 대선은 고사하고 정치 활동 자체가 위협받는 외나무다리 혈투였다. 지방선거 이후 보수재편을 주도하기 위해서라도 절대 질 수 없는 선거였다.

질 수 없는 선거, 그러나...

그러나 3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7년 동안의 재임기간을 거쳐 박 후보는 어느덧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3선 연임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시킬만한 안정감과 풍부한 시정 경험을 갖춘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여기에 '문재인 프리미엄'이라는 '어드밴티지'까지 더해졌다. 그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싸움에 뛰어든 셈이었다.

더욱이 선거는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애시당초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김 후보는 만만치 않은 힘을 과시하며 국면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박 후보의 일방적 독주가 이어지고 단일화 가능성마저 사라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2위 쟁탈전으로 모아졌다. 누가 2위가 되느냐에 따라 향후 정치권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야권의 보수 재편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거 결과 그의 최종 성적표는 3등이었다. 바른미래당 역시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전패를 당했다. 스스로는 말할 것도 없고,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창당한 바른미래당 역시 유권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은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그는 씻을 수 없는 정치적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궁금하다. 그는 이런 결과를 정말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출마를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 엄청난 산고를 겪은 끝에 바른미래당을 창당했기에 한 걸음 물러나 재충전을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숨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휴식이 필요할 법도 했다. 거듭된 선거 출마에 따른 피로감이 그의 정치적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노출 빈도가 높을 수록 정치인으로서의 참신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출마로 마음을 굳혔다.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 일선에서 물러난지 두 달여만의 일이었다. 사정은 있었다. 기대와는 달리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서 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를 위한 돌파구가 절실했다. 당의 간판이자 얼굴인 그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당내 지분을 양분하고 있는 유승민 공동대표의 불출마 의지가 확고한 이상 그 외에는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었던 탓이었다.


일각에서는 그의 등판을 정치활동 재개를 위한 예정된 수순이라 보는 시각도 있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대중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렵게 여긴다는 속설이 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 당내 위상이나 역할,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서둘러 조기 등판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당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제보조작 사건으로 당이 발칵 뒤집히자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정확하게 22일 뒤 그는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며 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었다. 

22일 동안 그가 어떤 반성과 성찰을 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마에 우려를 표시했고 심지어 당 내부에서도 만류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의 출마를 두고 당내에서 극심한 내홍이 펼쳐지기도 했다. '선당후사'하겠다며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하자 조직이 사분오열되는 '코미디'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당 대표에 오른지 몇 개월 후, 국민의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중도의 함정'에 빠진 안철수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통해 원내 2당으로 도약하려던 그의 야심찬 계획은 이번 지방선거 참패로 송두리째 흔들리게 됐다. 중도 성향의 정치세력을 규합해 집권을 도모하겠다는 그의 구상 역시 현실의 높은 벽 앞에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이유가 뭘까. 중간지대에 머물면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양극단의 정치에 신물난 유권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른바 '중도의 함정'에 너무 깊숙이 빠져버린 탓은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정치적 성향을 지닌다. 편의상 이를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사안에 따라 우연히 얻게 되는 지위일 뿐 '중도'는 개인의 정치적 스탠스를 대변하는 말이 아니다. 대중이 정치를 불신한다고 해서, 무당층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중도 지향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좋든, 싫든 대중은 정치적 현안에 정치적 의사를 갖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 인간이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지방선거 캠프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지방선거 캠프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이희훈

그가 정치에 발을 들어놓을 무렵은 대중의 정치 혐오가 극에 달한 시기였다. 정치공학에 함몰된 낡고 구태의연한 정치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요구가 하늘을 찔렀다. 정치판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는 대중의 열망은 새정치를 앞세웠던 그에게 그대로 투영됐다. 그는 정치개혁의 아이콘이자 상징이 됐고, 대한민국 정치를 선도해 나갈 '초인'이 됐다.

양당제에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했던 대중들은 그를 통해 기성 정치를 변화시킬 동력과 가능성을 찾기를 희망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정치, 삶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염원이 그에게 투사됐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안철수 현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대중의 정치 혐오와 불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중도적 스탠스를 앞세워 양당제의 헛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정치 여정은 시간이 갈수록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했다. 기득권 거대 양당을 거세게 비판하며 새정치의 당위를 역설했지만 실체 없는 말의 향연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법론을 제시하는 대신 양비론을 통해 반사이득을 얻으려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기 때문이다.

리더십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 그리고 바른미래당에 이르기까지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 그가 몸담는 곳마다 분열과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만 해도 바른미래당은 극심한 공천 갈등에 시달리며 힘을 하나로 규합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노원병 지역에서는 안철수계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유승민계인 이준석 지역위원장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김 교수의 불출마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그의 리더십은 이 때문에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겨우 수습되는가 싶었던 분란은 손학규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의 송파을 전략공천 문제로 극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막판까지 손 위원장의 전략공천을 고집해 당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정체성 논란도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논쟁거리 중의 하나다. 정치권에 입문할 당시만 해도 그는 진보·중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그는 조금씩 노선을 선회하더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보수적 스탠스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철수 현상의 거품이 걷히면서 진보·중도 세력의 지지세가 약해지자 타겟을 보수층으로 바꿨다는 지적이다.

유시민 작가는 2017년 대선을 앞둔 4월 24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5년 전에는 청년 멘토예요, 안철수 후보가요. 그래서 젊은층 지지가 되게 높았는데 지금은 고령층 지지예요. 한 정치인이 5년 사이에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회적 기반이 이렇게까지 변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에요. 저는 안철수 후보가 제자리로 갔다고 봐요"라고 꼬집은 바 있다. 원래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그의 노선 변경이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보수 표심을 의식한 그의 우클릭 행보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우유부단한 태도와 계속된 말바꾸기, 중도를 앞세운 모호한 노선과 정체성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민국 유권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중도 지향의 전략적 모호성이 결과적으로 양쪽 진영 모두에게 불신감을 안겨주었다는 지적이다.

안철수에게 필요한 것

서울시장 낙선으로 정치적 치명상을 입은 그의 거취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타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감안한 정계은퇴 가능성에서부터 당분간 정치권 밖에 머물며 재기를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 작가는 14일 방송된 <썰전>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유 작가는 이날 방송에서 "퇴로만 남겨놨다"며 그에게 필요한 건 "마음을 비우고 진로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면해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볼 것을 주문한 것이다.

거취 문제로 다시 장고에 들어가야 하는 그가 곱씹어야 할 대목일지도 모른다. 정치에서 '철수'하든 안 하든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그에게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성찰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무렵 혜성처럼 등장해 대한민국 정치판을 '들었다 놨다' 했던 정치인 '안철수', 그의 선택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 또 다시 기로에 서 있는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안철수 서울시장 선거 3위 #안철수 미국 출국 #안철수 정계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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