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치앙라이주의 한 동굴에서 태국 유소년 축구선수단과 코치가 조난되었다가 구조되었다. 코치와 함께 관광 겸 동굴로 들어갔다가 폭우로 물이 들어차면서 고립되었다. 이들의 사고는 조난 몇 시간 뒤 알려지고, 구조작전이 펼쳐졌다. 특수한 동굴의 상황과 폭우로 인해 수위가 높아지면서 금방 구조 작업이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해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처음 이 사고는 많은 희생이 예상됐었다. 어두운 동굴에서 물이 차오르는데 어떻게 버틸 것이며, 도심에서 건물이 무너져도, 구조하기 어려운데 흙더미가 내려앉은 동굴 안에 갇힌 사람들을 어떻게 신속하게 구한단 말인가. 더구나 구조 장비와 기술력이 많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한 태국에서 일어났으니 근거 없는 편견도 엄습했다. 필자는 태국을 다섯 번이나 여행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나라이고, 치앙라이는 태국 북부를 여행하면서 접한 지역이어서 걱정을 하면서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 2014년 4월, 그날처럼.
우리는 살면서 기적을 바랄 때가 있다. 가끔은 실제로 기적이 일어난 현장을 마주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염원이 전달되었을까, 태국 동굴 조난 사건에도 기적을 만들 구조팀과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 실종 직후부터 동굴 탐색을 시작한 태국 네이비실을 돕기 위해 미국 태평양 사령부 소속 지원팀과 영국의 동굴 다이빙 구조전문가, 호주의 의사 등 국제적 지원이 도착했다. 그 결과 조난 9일 만에 영국 잠수팀이 아이들이 고립된 곳에 도달하였고, 7월 10일, 사건 17일 만에 전원 구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발생한 태국의 동굴 조난 사건과 구조 계획, 과정은 재난 전문가들에게는 훌륭한 사례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또한, 국가를 연구하는 행정·정치학자들에게는 정부의 역할과 리더십에 대해 실제로 분석하고, 고민할 수 있는 사례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국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언론 보도와 구조 과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사고를 당한 코치의 현명한 상황 대처 능력, 구조 상황을 진두지휘한 치앙라이주지사의 리더십, 위험을 감수한 태국 해군의 임무 수행, 구조를 위한 국제적 지원, 동굴에서 퍼낸 물로 피해를 본 지역 주민들의 지지, 종교인들의 차별 없는 봉사 등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보여준 영웅들의 이야기도 잔잔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훈훈한 기적의 이야기 뒤에 우리의 아픈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태국 교민 잡지 편집장은 전하고 있다. 태국 동굴의 구조 소식을 들은 현지 교민들이 아이들의 구조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울음을 터트린다고. 세월호의 아픔을 언급하면서. 비단 태국 교민들만이 아닐 것이다. 소식을 접한 대다수 국민은 그렇게 그날의 악몽을 애써 억누르게 된다.
그때 우리는 왜 그랬을까. 왜 구하지 못했으며, 그들은 왜 구조를 막았을까. 지금 의문을 품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 봐도 아무런 실익이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를 먹먹함과 답답함, 아쉬움이 가슴 한쪽에서 꿈틀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우리는 모두 느끼고 있다.
나라다운 나라는 어떤 것일까. 취업률이 높고, 소득 3만 불 이상이면 될까. 국방력이 강하고,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일까. 종교와 표현의 자유, 인권과 정의가 보장된 나라일까. 사람마다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이건 어떨까. 국민의 아픔을 알고, 치유해줄 수 있는 나라.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인 면이 다분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소유한 인간이고, 국가는 이런 인간이 모여 만든 집단이란 점에서 이런 의견도 가능하지 않을까.
오래전 누군가 질문을 했다. 사람의 중심은 어디인지. 생각을 담당하는 머리, 물리적 중심인 배, 몸을 지탱하는 발 등 많은 의견이 나왔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제시한 답은 '몸에서 가장 아픈 곳'이었다. 우리 몸의 한 부위가 아프면, 사람의 온 정신이 그곳에 집중되고, 아픔이 해결되지 못하면 균형을 잃어 정상적인 삶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참 탁월한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프면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한 우선순위가 바뀌는 경험을 누구나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빌려보면, 국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나라의 중심은 지금 가장 아픈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다운 나라는 그 중심을 알고,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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