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답게 키워야지" 봉태규 욕하는 그들이 불편하다

'남자답게'가 아닌 '자기답게'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등록 2018.07.20 10:45수정 2018.07.2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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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한 장면 ⓒ KBS


"남자로 태어났으니 남자답게 키우는 게 맞지 않나요? 어이가 없네요."


배우 봉태규가 '핑크색을 좋아하고, 공주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의 뜻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밝히자 이를 비난하고 나선 댓글이다.

지난 15일 방송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봉태규의 아들 시하는 단발머리에 핑크색 한복을 입고 다녔다. 축구선수 이동국의 아들 시안이는 시하를 여자로 오해했다. 함께 다니면서 "오빠 손잡아, 오빠가 도와줄게"라고 말했고, "나중에 결혼하자"고 고백했다. 커플 스티커 사진을 찍을 때 시하의 볼에 '기습뽀뽀'를 시도한 시안이는 화장실에서 시하가 남자임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져 웃음을 자아냈다.

해당 방송 이후, 봉태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시하는 핑크색을 좋아하고 공주가 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응원하고 지지해주려고요.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기준이 아니라 시하의 행복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아이의 취향이라는 뜻이다. 그가 올린 게시물에는 "성별에 따라 '이래야 한다' 정해놓은 건 옛날 사고방식이다", "아이를 존중하는 모습이 멋지다" 등의 훈훈한 댓글이 달렸지만, 위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이런 양육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게 현실이다. 성별 고정관념이 여전히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실감한 순간이다.


핑크색이 여자의 색으로 여겨진 것이 100년도 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해도, 여자는 핑크색을, 남자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이 결코 본능이 아니라고 설명해도, 이미 성별에 따라 일정한 기준을 나눠 살아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경계를 허물기란 어려운 일인가 보다.

내가 싸워야 할 가장 높은 장벽은 '기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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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봉태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 봉태규 인스타그램


솔직히 고백하건대,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아이들에게 '성평등 교육을 하겠다'는 나조차도 견고하게 짜인 사회적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들과 딸을 각각 남성성과 여성성에 가두지 않고, 성별 고정관념 없이 기질 그대로를 존중하며 키우겠다고 매일 다짐하지만, 실천은 또다른 도전이다.

출산 전, 엄마가 다쳤을 때의 아이들 반응을 성별로 나눠 분석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남아들은 엄마가 울거나 말거나 본인이 하던 놀이를 계속했지만, 여아들은 함께 울며 공감한다는 실험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성별에 따라 정말 확연히 달라 보였다. 남자는 무뚝뚝한 게 당연하구나, 공감은 여자의 본능이구나 하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막상 두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우리 아이들의 경우는 정반대다. 딸보다 아들의 공감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 아프다고 하면 멀리서도 뛰어와 괜찮냐고 묻고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등의 감정표현도 더 풍부하다. 사소한 일에 쉽게 상처받으며 자주 울기도 한다. 또 '샤랄라' 하는 공주 드레스를 입고 소꿉놀이하는 것을 좋아하며, 누나는 전혀 가지고 놀지 않던 인형을 안고 놀기도 한다. 말투나 행동, 취향 모두 '여성스럽게' 보였다.

남편이 그런 아들을 보며 "남자애가...", "나중에 커밍아웃하지 마"라고 할 때, 그런 말 자체가 성차별이고 억압이라고 지적했지만, 실은 나도 속으로 '진짜 커밍아웃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누나가 발레하는 모습을 보고는 울면서 '나도 발레 시켜달라'고 조를 때는, 나도 모르게 '남자애가 무슨 발레를...'이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오르기도 했다.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싸워야 할 가장 높은 장벽은 '기존의 나'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이들을 사회적 기준이 아닌 아이들만의 온전한 모습으로 존중하며 키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성별 고정관념, 성차별적인 편견들과 끊임없이 마주하고 싸워야 한다. 소신 있는 육아에는 지속적인 성찰과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필요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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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봉태규와 아들 시하 ⓒ 봉태규 인스타그램


봉태규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핑크색 레이스 치마를 입고 외출하겠다는 천진난만한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을까.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당할까 두려웠던 거다. 사회적 기준보다 중요한 것이 아이들의 행복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우리 사회가 일정한 성별 기준을 따르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인가는 확신하기 어렵다. 내 소신은 얕고, 사람들의 편견은 견고하다.

커가는 아이들이 '남자답게', '여자답게' 성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단순하고 고리타분한 틀에서 벗어나 경계를 흐리고,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봉태규를 열심히 응원하기로 했다. 시하가 '남자답게'가 아닌 '시하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꼭 함께 지켜보고 싶다.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시하답게 잘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나의 두려움도 벗어던질 수 있지 않을까.
#봉태규 #봉태규 아들 #페미니즘 #아들육아 #슈퍼맨이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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