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었다. 마트 한 가운데서 43살의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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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아내도 그중에 한 사람인 것 같았다. 아내가 내 기분을 풀기 위해 농담을 던지면,
"지금 농담할 기분이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농담이 나와?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왔는지 알아?"다음 날 아내가 내 눈치를 보며 차분한 분위기로 말하면,
"무슨 초상 났냐? 하루하루 전쟁이야 나는 요즘. 그런데 집 분위기가 왜 이리 영국 날씨 같냐. 짜증 난다. 진짜."걱정이 돼 시골에서 전화를 건 어머니에게도 날을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굴었다.
"남들도 다 그래 산데이. 회사가 최고라고만. 꾹 참고 잘 다녀야 된데이."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내가 얼마나 힘들게 회사에 다니는데, 엄마는 회사 한 번 안 다녀 봐 놓고 멀 안다고 그래요!"제2의 사춘기라고 이해해 달라기에는 너무나 편협한 사고와 이해력으로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지하 화장실을 찾아가듯이, 나의 자존감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엄마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참아야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다니.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마음을 가다듬자.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병 들어가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주말이면 영화에 등산에 각종 문화행사를 찾아 다니던 나는 너무나 수동적인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찾아온 불면증 때문인지 토요일은 늦잠을 자고도 소파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여보. 우리 어디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마트에서 브런치 먹자. 피자 먹으면 브런치지 뭐. 가격도 싸고 맛도 좋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호수공원 산책도 다녀오고..."내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마트로 향했다.
일요일 오전 11시도 안 된 시간인데 다음 날 출근 생각을 하니 편두통이 몰려왔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집을 나섰다. 4월의 눈 부신 햇살도 남의 일 같았다. 그런데, 마트 도착 5분 전부터 갑자기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 설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자리에 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게 뭐지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장 회전문을 여는 찰나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키가 내 허리에도 오지 않는 꼬마 아이가 뛰어나오다 나를 스치며 지나갔다. 넘어진 쪽은 5살 꼬마 아이가 아니고 나였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매장 한 가운데 주저앉았고,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어떤 강한 힘이 내 목을 옥죄고 있는 느낌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숨을 쉬게 되면서 울음이 터진 것이다.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자유의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울었다. 마트 한 가운데서 43살의 아저씨가... 일요일 오전 11시에. 1층 매장으로 4월의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 당황해서 같이 울고 있는 - 아내를 비추고 있었다.
그랬다. '연예인병'인 줄 알았던 공황장애가 나에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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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안 죽었다. 출간
찌라시 한국사. 찌라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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