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파라다이스가 된 '꿈의 섬' 하와이

[해외리포트] 살인적인 물가와 한정된 일자리... 서울의 10배 넘는 노숙인들

등록 2018.09.11 18:14수정 2018.09.11 18:42
11
원고료로 응원
 하와이 호놀룰루시 도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노숙인.

하와이 호놀룰루시 도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노숙인. ⓒ 임지연


지난 8월 어느 일요일 오전 10시,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에 소재한 세계 최고의 해변 '와이키키'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붐볐다. 나무 그늘에는 저마다 돗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하는 여행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해외 유명 호텔들이 밀집한 해변 근처부터 대형 쇼핑몰 '알라모아나(Alamoana)' 인근까지 길게 이어지는 백사장에는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주말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그런데 그 한켠에 검은 쓰레기통 속으로 상체를 반쯤 숙이고 무언가를 찾는 데 열중하고 있는 노숙인 남성이 눈에 띄었다. 그의 존재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와 열 걸음쯤 뒤에 비치된 또 다른 쓰레기통 옆에서도 앞서 눈에 띈 노숙인과 비슷한 행색의 남성이 쓰레기통을 뒤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이 찾고 있는 것은 여행자들이 먹고 남긴 음식물이나 음료, 그들이 사용하고 버린 옷가지나 신발 등이다. 그들은 주로 쓸 만하다고 판단되는 물건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서 이미 터질 듯해 보이는 가방을 끌고 해변 이곳저곳을 헤매거나, 인근 대형 마트에서 제공하는 커다란 카트를 밀며 도심을 방황했다.

노숙인들이 있던 자리에는 어김없이 악취가 풍겼는데, 여행객들 누구도 그들에게 옆을 내어주지 않았다. 

꿈의 섬으로 알려진 하와이섬의 현재 모습이다. 

부동산과 물가는 폭등... 임금은 제자리 

하와이는 총 8곳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태평양 중심에 자리한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는 그 가운데 오하우(ohau) 섬에 소재한 와이키키 해변 인근이다.


해외 언론과 여행사 홍보에 의해 알려진 하와이의 모습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담아간 하와이의 모습은 하얀 백사장 와이키키 해변, 365일 평균 24도의 온화한 기후를 가진 살기 좋은 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와이 도심에 자리한 대형 주택가 모습. 월평균 3000달러 이상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와이 도심에 자리한 대형 주택가 모습. 월평균 3000달러 이상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 임지연

 
하지만 필자가 직접 목격한 '지상 낙원' 하와이의 이면에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물가로 인해 고통받는 현지인들과 매년 치솟는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인이 있다. 하와이의 노숙인 문제는 매우 심각한데, 지난해 12월 기준 하와이 인구 1만 명 당 노숙인 수는 50명에 달한다(2016년 기준 서울은 인구 1만 명 당 노숙인 수가 3.61명).


지난 2014년 영국의 유력 언론 <더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와이 거주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총수입의 약 30~40%를 월세 비용으로 지출해야 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는 지난 2001년 4인 가족 기준 총수입의 약 10~13%만을 월세에 지출했던 것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곳에서 와이키키로 대변되는 해변가 인근의 관광지를 제외하고, 현지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는 마키키(makiki)와 카이무키(kamuki) 등이 꼽힌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운타운까지 이동할 수 있고, 인근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탓이다.

주로 학생이나 중산층, 저소득층이 각각의 구획된 구역에 나뉘어 사는 이곳의 평균 월세 비용은 1500~2500달러(한화 168만~280만 원) 수준이다. 이 역시 완공된 지 40년이 넘은 오래된 주택의 얘기다. 건축한 지 10년 이하, 10층 이상의 비교적 고층 건물의 경우에는 방 1개, 부엌 1개, 화장실 1개 등을 갖춘 시설의 월평균 임대료는 3000달러(한화 336만 원)를 쉽게 넘는다.

와이키키 해변 인근이나 알라모아나 쇼핑몰 근처에도 최근 대형 빌딩과 거주지가 형성됐다. 이 지역의 임대료는 스튜디오 형식의 원룸이 월평균 4000달러(한화 448만 원)를 넘는 수준이다.
 
a  하와이 도심의 고급 주택 입구.

하와이 도심의 고급 주택 입구. ⓒ 임지연


반면, 현지 최저임금 수준은 몇 년째 큰 변동 없이 제자리 걸음이다. 지난해 9.25달러에서 올해 10.1달러로 소폭 상승했으나, 높은 물가 수준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와이는 지난 2015년 7.25달러에서 이듬해 8.50달러 등으로 최근 4년 동안 5차례(2015년 두 차례 상승)에 걸쳐 최저임금을 상승시킨 바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경우 일주일 평균 116시간을 일해야만 원룸 월세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부동산 비용과 물가 상승이 살인적이다.

하와이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 섬이 됐을까? 섬이라는 제한적인 자연환경 탓에 하와이 현지에 제조업 등 산업 기반이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관광업 이외에는 뚜렷한 산업이 없는 이곳 특성상, 청년들의 일자리는 오직 하와이를 찾아오는 여행객과 관련한 관광업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와이의 관광업은 호텔, 여행 가이드, 요식업 등 상당수 일자리가 단순 업무를 다루는 것에 그친다. 기술이나 경력 등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하와이 현지 임금 수준은 높아질 수 없다고 현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문제는 소비재 대부분을 미국 본토에서 주문해 사용하는 탓에 현지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지 언론 <뉴스나우>에 따르면, 미국에서 뉴욕 맨해튼 다음으로 물가가 높은 지역으로 하와이 호놀룰루가 꼽혔으며, 3위는 하와이의 또 다른 섬 '빅 아일랜드'였다.

갈 곳 없는 노숙인들, 해변 대신 거주 지역으로
 
 하와이 도심 거리 곳곳에서 거주하는 노숙인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호놀룰루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노숙인들이 사용하고 남은 쓰레기.

하와이 도심 거리 곳곳에서 거주하는 노숙인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호놀룰루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노숙인들이 사용하고 남은 쓰레기. ⓒ 임지연


그런데 하와이 주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하와이 미관 사업을 위해 노숙인들이 해변 또는 공항 인근에서 취침을 할 수 없게 하는 법규를 신설했다. <뉴스나우>는 해당 법규에 대해 "정부가 하와이를 찾는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노숙인이 많은 곳이라는 첫 인상을 심어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노숙인들은 해변에 들어갈 수 없으며, 이곳에서 눕거나 앉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공항도 마찬가지다. 공항 인근에서 취침하는 노숙인은 관리인에 의해 즉각 건물 밖으로 퇴출 당한다. 이를 어긴 자에 대해서는 1000달러의 벌금 또는 30일 이상의 구류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도심에서 자동차를 거주지로 사용하거나, 텐트 등을 이용해 캠핑을 하는 경우도 동일한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법규가 시행된 후 노숙인들이 와이키키 해변 대신 현지인들의 주로 거주하는 마키키, 카이무키, 다운타운, 차이나타운 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지 거주민의 거처로 이동한 노숙인들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거나, 아파트 공터 또는 주차장, 상점 앞, 보행자 도로 등에 무단 취식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노숙인에 의한 도난, '묻지마 폭행'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현지 주 정부는 올 초 일명 '하우징 퍼스트 스텝'이라고 불리는 노숙인 쉼터를 건설하는 데 3조 5천억 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주택 사업의 최우선 입주자는 다운타운에 거처를 둔 노숙인 100여 명이라고 덧붙였다. 또, 약 55조원을 추가 투자해 이른바 '홈리스 하우징(homeless housing)' 사업을 펼치겠다고 알렸다.

다만, 사업 실시 기한에 대해서는 '오는 몇 년 이내에는 자금 확보 문제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현지에서는 주 정부의 현실성 없는 대안과 현지 주민이 아닌 여행자만을 겨냥한 보여주기식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이 같은 주 정부의 무관심과 날로 치솟는 물가, 부동산 가격 탓에 하와이를 최고의 이민 지역으로 손꼽던 외국인들도 하나둘씩 현지를 떠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인 향씨(식료품점 운영, 하와이 거주 4년)는 "자녀 교육을 위해 하와이를 찾았지만, 근로자들은 낮은 임금과 높은 물가에 고통받고, 작은 가게라도 경영하는 사업자들은 높은 원가 비용 탓에 생활이 어려운 지경"이라고 밝혔다. 그는 "누군가 하와이 이민을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예전처럼 당장 와서 시도해 보라고 권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인들 중에 이미 하와이에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역이민자들의 사례도 상당히 많다, 우리들끼리는 이곳을 일컬어 '잃어버린 파라다이스'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하와이 #노숙인 #미국이민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