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현동 신新대가족 이야기>
김유보
<사리현동 신新대가족 이야기>는 현대에는 보기 힘든 대가족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서슬 퍼런 가문에 시집 장가와서 가문을 지키며 겪는 진부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와 서울의 집값 등 현대인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모인 유쾌한 가족 이야기이다.
서열 1위 할머니부터 서열 6위 아들까지 모두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우자, 부모님, 시부모님, 장인장모님, 아이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이들 모두 몇 년 전에 필자가 거주하는 멕시코에 한달 정도 다녀갔고 그 기간 동안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사리현동으로 이사 가기 전 거주하던 고양시 관상동에 초대받았고, 가져간 테킬라를 마시고도 모자라 집안 모든 술을 말끔히 흡수해 버린 가든 파티가 기억에 남는다. 그 때도 서열 6위는 아르헨티나 한글학교 국어교사로 파견되어서 내일 떠날 짐 정리하랴 서열 5위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보러 산후 조리원으로 가랴 정신이 없었고 서열 4위 사위는 필자와 같이 정원에서 테킬라를 원샷하며 기타를 치며 즐기던 베짱이였다.
서열 6위 아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결혼 6년차. 만 5주년을 앞두고 나는 문득 우리의 삶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위의 말처럼 책을 쓰도록 주도한 이는 서열 6위 아들이다. 초등학교 선생인 아들의 캐릭터는 묵묵함이다. 책 곳곳에서 가족애를 진하게 그리워하고 좋아하며 주도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내와의 만남부터 결혼 그리고 아르헨티나 국어교사 시절을 소소하고 담담하게 서술한다.
서열 5위 며느리6위 아내인 서열 5위는 조금은 짠한 캐릭터이다. 서열 6위의 아내로서 시댁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현실적인 이유로 시댁 식구들과 같이 살게 되었고, 허물없는 가족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먼저 아르헨티나로 간 남편에 대한 원망과 현실 탈피의 욕구는 "한 번은 비자 연장 겸 우루과이에 가서 혼자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는데 지구를 뚫고 가서 고기 한 점 얻어먹고 싶은 심정이었다"라는 문구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물론 서열 1위의 말처럼 뱀 허물을 벗듯 탈피한 자국을 침대에 매일 남기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서열 4위 사위흥미롭다. 멕시코에서 여러 번 술도 마셨지만 캐릭터가 이 정도 인줄 몰랐다.
"지저분했다. 원래 그냥 한국에서 지낼 때도 지저분했는데, 더 지저분해져서 나타났다. 아이들도 지저분해져서 나타났다. 그렇지만 장모님께서는 너무 반갑게 맞이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리움은 더러움보다 큰 법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2년여 동안 나름 고생이라면 고생을 하고 온 처남 내외와 아이들을 보고 가감없이 기술했다. 서열 3위 딸이 서술한 것처럼 본인이 관련된 일이 아니면 철저하게 객관화 시켜버리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다.
하물며 배우자와의 만남, 결혼에 이르는 과정까지 통으로 상실의 시대로 넘겨버렸다. 프라모델 수집, 그림,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위 4위는 서열 3위 아내가 장장 9페이지에 걸쳐서 써 놓은 관상동에서 사리현동으로의 이사의 고통도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변호사인 큰형에게 문의했다. 전세금 반환 소송은 간단했다. 그냥 돈을 받게 되었다."극강의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