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엄마와 자녀들의 서울 나들이
김혜원
"선생님 서울은 좋은가요? 서울은 여기에서 먼가요?"
귀화시험 수업을 하던 중 캄보디아 출신 엄마 엥(가명)씨의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한국살이 15년 차 결혼 이주여성인 그녀가 한 번도 서울에 가 본 일이 없다는 것이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다. 서울에서 먼 거리도 아닌 경기도 광주에 살면서 서울을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다니...
"저는 일을 많이 했어요. 집안일도 바쁘고 가게도 봐야 하고 공장에도 가야 하고 또 애들도 남편도 챙겨야 해요. 저 혼자는 갈 수 없어요. 길도 몰라요. 글씨도 몰라요. 아무도 저를 데려가지 않아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요. 사실 저도 잘 몰라요."올프렌즈센터 다문화 팀에서는 한 해에 두 번 정도 엄마들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문화체험을 간다. 그동안 민속촌, 남한산성, 롯데월드, 백화점 문화센터 등을 다녀오긴 했으나 그때마다 엥씨는 집안일, 공장일, 가게일을 하느라 한 번도 참석할 수 없었다. 문화체험은커녕 귀화 시험을 위한 공부도 일이 많을 때는 참석이 어려워서 본인이나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애간장을 태우기 일쑤였다.
"선생님 이번에는 저도 갈래요. 바쁘지만 꼭 참석하고 싶어요. 하루 정도는 저 없어도 되요. 우리 낭이도 그런 기회가 없었어요. 저는 꼭 같이 가고 싶어요."엥씨가 일을 뒤로 미루고 지난 토요일(25일) 서울을 구경 가기로 작정한 것은 큰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일 중독으로 보일 만큼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그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조금 마음에 여유를 갖기로 했다. 일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막내아들과의 갈등도 피할 수 없었다. 엄마가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벌고 가족이 잘 살면 그 모든 것들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잘 사는 것도 아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이제 너무 일만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동안은 일을 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뒤로 미루고 열심히 일만 했어요. 일이 힘들어 아기를 두 번이나 유산했어요. 임신한 줄 모르고 무거운 것도 막 들고 밤새워 일했어요. 병원에 다녀와서도 쉬지 않고 또 일을 했어요. 저는 일하는 게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 자꾸 몸도 아프고 힘들어요. 가족들도 저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고, 슬프고 외로울 때가 많아요."결혼 생활 15년 차 엄마가 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 지난 15년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살아왔지만 여전히 가진 건 없고, 가족 안에서도 그녀의 수고가 이해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러움이 북받치는 것이다.
어디 엥씨 혼자만의 눈물일까.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에 와서도 그리 넉넉한 생활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이 차별이다. 사회에서는 물론 가족에게까지 피부색과 생긴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냉대받고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한다. 결혼이주여성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고통이 너무 크다.
삶에 지치고 사람에 시달려 죽을 것처럼 괴롭고 힘들어도 말없이 최선을 다하는 그녀들. 짐작조차 어려운 수많은 어려움을 견디며 한국 아이의 엄마로 한국 남자의 아내로 한국 시부모의 며느리로 살려고 애쓰는 그녀들의 모습은 여든 넘은 우리 엄마의 삶만큼이나 희생적이다. 그래서 더욱 애잔하다. 내가 아는 다문화엄마들은 착하고 지혜롭다.
"선생님 서울 너무 좋아요. 이런 좋은데 데려와주셔서 감사해요. 막내아들보다 제가 더 좋아요. 캄보디아 있을 때도 이런 데 가보지 못했어요. 한국와서도 처음이에요. 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정말 좋아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사실 이번 서울 여행은 마흔 초반 그녀의 삶에 큰 도전이었다. 지난 15년 오직 집과 가게, 공장을 쳇바퀴처럼 오가던 그녀가 과감한 일탈을 시도한 일생일대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외출을 응원한다.
'엥씨, 이제 시작이에요. 이렇게 조금씩 엥씨 자신을 사랑해 줍시다. 앞으로는 남편이나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엥씨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까짓 서울구경 가고 싶으면 또 가자고요. 열심히 살아온 엥씨에게도 선물을 주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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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 넘어 첫 서울 여행, 그녀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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