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전두환? 국민들 기억은 생생하다

[게릴라칼럼] 셀프 면죄부 거두고 당당하게 법정에 서라

등록 2018.08.30 12:30수정 2018.08.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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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영화 <택시운전사>더 램프

"<택시운전사> 장면 중 계엄군이 시위를 벌이는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다. 당시 계엄군들이 먼저 공격을 받아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다."

작년 8월, 전두환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기세등등했다. 당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 전화 인터뷰를 한 민 전 비서관은 "당시 5·18 상황은 폭동인 게 분명하다"며 "아무 법적 정당성도 없는 시민이 무장하고 무기고를 습격한 걸 폭동이 아니면 뭐라고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작년 8월은 5.18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관객몰이에 나선 시점이었다. 민 전 비서관은 "(<택시운전사>에) 악의적인 왜곡이나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상업영화의 개봉을 두고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반면 영화는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보란 듯이 관객 천만을 돌파했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서도 당당했다. 이와 관련, 작년 8월 4일 광주지방법원 민사21부(박길성 부장판사)는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와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그리고 고 조비오 신부 유족 등)가 전두환씨와 아들 전재국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서 민 전 비서관은 당시 JTBC <정치부회의>와의 인터뷰에서 인권을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들, 자유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을 금서 처분한 나라가 있었는지, 난 그걸 그런 걸 들은 바도 없고…. 그런데 외국에서 볼 때 '한국은 민주화된 개인의 사상, 표현의 자유 같은 것 철저하게 보장이 되는 인권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아니,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조차도 금서 처분하는 그런 나라구나.' 이런 식이 될 경우에 외국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겠습니까."

1년 전과 확연히 다른 태세전환

 지난 2017년 4월 4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매장에 <전두환 회고록>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2017년 4월 4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매장에 <전두환 회고록>이 진열되어 있다.권우성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출간된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 등으로 폄하한 사자명예훼손를 받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전 전 대통령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27일 열린 재판 출석을 거부했다. 그게 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의 '알츠하이머' 투병 때문이란다. 지난 8월 변호사를 통해 "재판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힌 것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광주지방법원 재판부는 강제 구인 대신에 10월에 다시 출석하라며 기회를 줬다. 민정기 전 비서관도 수세적으로 돌아섰다. 전 전 대통령이 2013년부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고, 그로 인해 회고록도 자신이 책임지고 완성했고 전 전 대통령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회고록의 서문에 다 상세하게 써있지만요. 전 대통령이 퇴임하시고 나서 회고록을 쓰시겠다고 2000년부터 그거를 구술 녹취도 하고 이렇게 하는 식으로, 준비를 2000년부터 했으니까요.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났던 2013년까지는 13년의 세월이 흐른 겁니다.


그러다가 2013년에 전 대통령 스스로도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시니까 2013년인가 14년 그 무렵에 저를 찾아가지고 '이제부터는 이거 초고가 됐으니까 민 비서관이 이걸 책임지고 맡아서 완성하라. 전적으로 일임한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내가 전적으로 알아서 내가 맡아서 책임지고 원고를 완성한 겁니다. 퇴고 과정에서 전 대통령은 전혀 여기 개입을 안 했어요."


지난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민 전 비서관은 자신의 역할을 적극 피력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민적 비난은 물론이요 재판의 피고가 바뀌어야 할 형편이라 할 수 있다.

전 전 비서관은 또 "조비오 신부가 하는 주장이 허위라는 건 전 대통령도 알고 계시죠"라며 "허위라는 건 알고 계시겠지만 이 표현 자체는 내가 쓴 겁니다"라며 전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내내 궤변을 늘어놓았다. 2017년 신년회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건넨 '덕담'에 관해서도 '선택적 기억'과도 같은 변명을 늘어놨다. 하여튼, 그게 다 알츠하이머 때문이라는 얘기다.

"(자신이 직접 회고록을 작성한 것이) 그게 무슨 속인 거예요. 원래가 회고록은 저자 명의로 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모든 회고록이 저자가 직접 쓴 회고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신체적 건강으로는 (법정에) 충분히 가실 수가 있는데. 아까 얘기했지만 거기서 말씀하시는 내용들이 (재판에서) 전혀 진실성 있게 사실과 부합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게 전혀 없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다는 것은 전 대통령이 70년 동안 알고 지냈기 때문에 알지만, 1980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건 전 대통령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고. 기록과 자료를 보고서는 회고록이 작성됐기 때문에 거기에 관해서 무슨 질문이 나오게 되면 대답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민정기 비서관이 운운한 그 '민심'은

 국방권익연구소·민주평화재향군인회·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이 2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검에 '1987년 당시 전두환 군부의 소요진압작전명령(87-4호) 관련 전두환·박희도·이문석 내란미수죄 고발장'을 제출했다.
국방권익연구소·민주평화재향군인회·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이 2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검에 '1987년 당시 전두환 군부의 소요진압작전명령(87-4호) 관련 전두환·박희도·이문석 내란미수죄 고발장'을 제출했다.소중한

쟁점은 또 있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광주광역시에서 재판이 열리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관련 재판이 서울에서 열릴 경우 출석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언론 보도가 난 것에 대해서도 민 전 비서관은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민심'을 들먹였다. 불과 1년 전 '인권 선진국' 운운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서울로 옮기면 출석하신다, 아마 변호사가 그런 생각으로 하셨는지 모르지만. 서울로 옮기라는 건 광주에서 하는 것이 그게 납득이 안 간다. 관련법에도요, 피고인의 주소, 거주지로 하게 돼 있어요. 그리고 형사소송법에 딱 무슨 죄가 있냐 하면, '지방 민심의 사정으로 재판이 공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염려가 있을 때에는 검사가 상급법원에 관할 이전을 신청하여야 한다'고 돼 있어요.

'하여야 한다'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의무조항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조항이 분명히 형사소송법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광주 문제를 광주에서 하게 되면 지방 민심에 영향을 받겠습니까, 안 받겠습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걱정하는 민심이란 도대체 어떤 민심인 걸까. 예컨대 이런 종류인건가. 지난 20일 국방권익연구소·민주평화재향군인회·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은 1987년 당시 전두환 군부의 소요진압 작전명령(87-4호) 문건과 관련해 전두환 대통령, 박희도 육군참모총장, 이문석 작전참모부장 등을 내란음모죄로 고발했다.

육·해·공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으로 구성된 이들 단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발인들이 1987년 당시 "사실상 계엄 상황을 상정한 시민 진압 작전을 하달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995년 12월 제정·시행된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을 근거로 내란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적 근거를 제시했다.

지난 22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등 민주화운동, 민주 열사 유가족단체와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도 기자회견을 열고 "1987년 6월 전두환 정부가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해 학살극을 벌이려 했던 음모가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1980년의 학살범들은 죄를 사면받아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고 이들의 후예들은 2017년 박근혜 친위쿠데타를 모의하며 촛불 시민을 짓밟을 계획을 세웠다"며 "6월 항쟁과 민주 열사들의 이름으로 역사의 죄인들을 법정에 세워 엄히 단죄하기 위해 내란범 전두환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의 고발은 최근 1,2부로 나뉘어 방송된 MBC < PD수첩 > '군부 쿠데타'가 공개한 1987년 당시 전두환 군부의 소요진압 작전명령(87-4호) 문건의 후폭풍이라 할 수 있다. 문건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군부가 계엄을 통해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5.18 광주와 같이 무력으로 진압하려던 계획을 생생히 담고 있다. 민 전 비서관이 운운한 '민심'은 이렇게 '전두환의 단죄'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원하고 있는 셈이다.

알츠하이머란 핑계

 2016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투표를 한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연희동제1투표소를 나서고 있다.
2016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투표를 한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연희동제1투표소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2012년 12월 19일. - 제18대 대통령 선거 투표
2013년 2월 25일 -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참석
2015년 10월 11일 - 대구공고 체육대회 참석
2016년 4월 13일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
2016년 10월 22일 - 최규하 전 대통령 추모식
2017년 1월 1일 - 자택에서 '신년회'
2017년 4월 3일 - 회고록 출간


재판 당일이던 지난 27일, <허프포스트코리아>는 "그렇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 투병을 해온 지난 5년 동안 어떻게 투병생활을 했을까?"라며 언론에 공개된 전 전 대통령의 공식 활동을 위와 같이 정리했다.

그 어느 전직 대통령보다 정력적으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랬던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를 핑계로 재판 출석을 거부하며 읍소를 펼치고 있다. 그것도 '민심'을 걱정하면서. 국민들은, 그리고 숱한 피해자들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의 사법적 단죄와 대국민 사죄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봉착했다.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용서를 할 수가 있어요?"

영화 <밀양> 속 전도연이 연기한 신애의 대사다. 신애는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면회하고 와서부터 정신을 놓기 시작한다. 범인은 온화한 얼굴로 "하나님에게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라며 신애에게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동의를 구한다.

<밀양>의 모티브가 된 소설가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는 5.18 광주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8년 한 유괴범이 사형 직전 종교로 구원받았으니 장기 기증하겠다고 했던 사건을 소설로 변형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도, 그 가해자의 얼굴에 신군부를, 책임자 전두환을 대입시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알츠하이머' 운운하는 것 역시 다를 바 없다. '선택적 기억'을 들먹이며 사법적 판단을 피해 가려는, '셀프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허나 '민심'은 절대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피고 전두환이 재판 준비가 안 된 것처럼.

1년 전과 같이, 회고록 출간 당시처럼, 당당하게 법정에 서시라. 연이은 고발 건 역시 당당하게 대응하시라. 알츠하이머란 핑계를 받아들이기에, 피해자들의, 국민들의 기억은 여전히 너무 생생하다.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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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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