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개입 의혹이 불거진 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이희훈
사법농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문제가 대한민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저 보수화된 사법부가 일부 밉보인 법관들을 특별 관리해, 인사상 불이익을 준 사건 정도로 알았습니다. 이름하여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 사건의 본질이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재판거래'란 것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 헌정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선 판사들이 외압을 받아 양심에 반한 재판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법원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관의 양심을 팔아 권부와 거래한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그 유명한 대법원 판결을 기억하십니까. 강제징용사건, 과거사 손해배상 사건, 전교조, KTX 그리고 쌍용자동차 등 노동사건 말입니다. 가르치면서도 조금 이상했지요? 알고 보니 그들 사건이 모두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분립과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한 헌법파괴 범죄입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법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재판에 대한 신뢰는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사법의 위기이자 정의의 위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사태가 이쯤 되었으면 정치권에 비상이 걸려야 할 텐데, 어쩜 이렇게 조용합니까. 이 사건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사건에선 득달같이 달려들어 국정조사와 특검카드를 빼들었던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어디에 간 것입니까.
법원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사법부가 일대 위기에 빠져 있는데도 그 불신의 당사자인 법원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양승태 시절 임명된 대법관들은 여전히 법대를 지키고 있고, 영장전담법관들은 검찰이 청구하는 압수수색 영장을 열에 아홉 기각하는 사태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의 수천 법관들은 조용합니다. 관련 대법관들 물러나라는 소리 한 번 못하고 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기대를 걸어야 할지도 자꾸 의심이 갑니다. 그에게 도대체 이 사법농단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겁니까?
언론은 어떻습니까. 몇몇 진보언론을 빼고는 대부분 언론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헌정유린 사태를 이렇게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보도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 사태를 사법부 내의 보혁 충돌이라는 색깔 논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일부 언론을 보고 있노라면 복장이 터집니다.
학생이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