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쌍용차·용산 DNA채취규탄' 기자회견
진보넷
실제 DNA 채취를 당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사례를 통해 DNA 채취 이후 당사자가 얼마나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는지 확인 할 수 있다. 당사자는 채취 이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외부에서 자신의 DNA 흔적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게 됐다고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때면 수저를 꼭 닦고 나오고, 담배꽁초도 주머니에 담아뒀다가 집에와서 한꺼번에 버리는 등 감시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당시 해당 판결에 반대의견을 제시한 4명의 판사는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대상자에 대한 DNA 감식시료의 채취는 이러한 입법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해당 사건에 있어서도 '재범의 위험성에 대하여 전혀 규정하지 않고, 특정 범죄를 범한 수형인등에 대하여 획일적으로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게 하여 침해최소성의 원칙에 어긋나고, 재범의 위험성을 규정하지 않는 이 사건 채취조항들로 인한 수형인의 불이익이 채취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아, 해당사건의 채취조항들은 과도하게 청구인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상범죄들 중 상대적으로 죄질이 경미한 경우, 재범위 위험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고 장기간 정보의 보관시 유출, 오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대상범죄의 경중 및 그에 따른 재범의 위험성에 따라 관리기간을 세분화 하는 등 충분히 가능하고 덜 침해적인 수단을 채택할 수 있고, 장기간 보관과정에서 정보의 유출, 오용등의 문제 발생시 대상자가 실제 입는 불이익이 적지 않아 대상자가 사망한 후에야 정보를 삭제하는 것은 과도하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에 대한 DNA 채취 요구는 그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2016년에는 노사분쟁 중 공장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구미 KEC지회 노동자 48명이 DNA 채취를 당했고, 2017년에는 노점상 활동가들이 노점상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약 20여분 아울렛 매장 안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쳤고, 이에 집행유예 판정이 났음에도 DNA 채취를 당했다. 2018년 올해까지도 희망버스에 참가했던 사회단체 활동가 및 유성 노동자, 학내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던 학생들에게도 DNA 채취를 요구했다.
특히 구미 KEC 노동자 이미옥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시 DNA 채취 과정에서 느꼈던 공포와 수치심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고, 이는 결국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DNA 채취 당시 '소명의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채취를 거부 할 시 체포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고 했다.
박김영희 활동가(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여전히 이동권 투쟁,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및 시설 폐지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간절한 투쟁에 예비 범죄자 낙인을 찍은 것"이라며 활동가들에 대한 검찰의 DNA 채취를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당사자들은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이루어지는 DNA 채취 요구에 대해 "노동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범죄 집단이 아닌데도 마치 범죄 집단이나 테러 단체라도 되는 듯 강조하려는 것이 적폐이며 이런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상대로한 DNA 채취는 결국 활동가들을 '재범의 우려가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이들의 활동을 제약한다. 특히, DNA같은 민감 정보를 당사자의 의사 청취 및 불복 조항도 없이 강제하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디엔에이법'은 무엇이며, 왜 문제일까?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2016헌마344 등)는 디엔에이감식시료채취와 관련 "채취대상자가 자신의 의견을 진술하거나 영장발부에 대하여 불복하는 등의 절차"가 부재한 현행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디엔에이법)은 지난 2010년 7월 강력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이유로 재정되었으나, 법의 집행 과정에서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까지 집행 범위가 확대되었다.
디엔에이법 제5조 '수형인등으로부터의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의 조항'에 보면 "검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죄 또는 이와 경합된 죄에 대하여 형의 선고, 보호관찰명령, 치료감호선고, 보호처분결정을 받아 확정된 사람(이하'수형인')으로부터 디엔에이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범죄는 '살인, 강도, 강간, 방화, 폭행' 등 재범의 우려가 높고 사회 안전을 현저히 해칠 수 있는 경우들이다. 흔히 말하는 강력범죄의 처벌에 따라, 이들의 재범을 막기 위함은 물론 재범이 발생 했을 때 빠르게 범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이다.
애시당초 이 법은 성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제안되었다. 하지만 제정 과정에서 그 채취 대상범죄를 무려 열 한개로 확대하였다. 법의 적용 과정에서도 재범 여부에 대한 판단 없이 '주거침입, 퇴거불응' 등의 이유로 DNA 채취 영장이 발부되었다. 뿐만 아니라 형이 확정되지 않은 형사피의자와 미성년자까지 채취 대상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DNA 식별로 재범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강력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입법 취지에 반하는 마구잡이 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은 DNA 채취는 체포나 구속처럼 인신 구속을 전제로 하지 않기때문에 영장의 발부 및 집행 과정에 있어서 채취 당사자가 이와 관련 의견을 개진하거나 불복할 수 있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 역시 청구인(DNA채취 당사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주요 요지였다. 김태욱 변호사는 "헌법불합치도 위헌의 일종"이라고 강조했으며, 이에 따라 위헌적 방법에 의해 채취된 DNA신원정보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아니라 DNA 정보는 가족검색 기법을 적용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의 소지가 높다. DNA 특성상 가족구성원 한 명의 DNA정보를 통해 가족 전체의 DNA 정보를 추론 할 수 있는 셈이다. DNA는 지문, 홍체 등 다른 생체정보들과는 달리 특정인 한 명의 정보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 등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경우 인구사회학적 정보에 대한 추론이 가능해져 학계와 인권단체에서도 높은 우려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에도 언급 되었듯이, DNA 신원확인정보를 기간의 제한 없이 보관하는 것은 채취 당사자가 재범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유지되어 대상자의 침해되는 사익을 증대시키고 유출·오용 등 보관상의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NA감식시료채취영장이 발부된 경우에는 이에 불복할 수 있는 조항은 법 어디에도 없다. 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소명자료를 제출한다고 해도 법에 그 절차가 부재하니 판사가 당사자의 의견이나 소명자료를 확인·고려하여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칠 수 없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한 번 채취되어 데이터베이스에 DNA 신원확인정보가 수록되면,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특별한 이유 없이는 당사자의 사망시까지 자신의 DNA 신원확인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되어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용도로 이용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는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채취 대상자의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의 제한'으로 작용하게 된다.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것은, "채취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을 형해화하고 대상자를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하는 것이 된다.
마구잡이 DNA 채취, 과연 멈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