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러시아를 지배한 사회주의 유산들

[여름철 시베리아 그리고 바이칼 18] CCCP박물관

등록 2018.09.27 14:30수정 2018.09.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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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역으로 가 기차를
 

교외선 열차 엘렉트리치카를 탄 노보시비르스크역 ⓒ 이상기

  
러시아는 철도교통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노보시비르스크역에서 주변 중소도시로 이동하는 데도 기차를 이용한다. 이러한 교외선 열차를 엘렉트리치카(Elektrichka)라 부른다. 횡단철도가 큰 도시를 직행으로 연결한다면, 엘렉트리치카는 큰 도시와 작은 도시를 완행으로 연결한다. 우리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시야텔(Seyatel)에 있는 철도기관차박물관에 가기 위해 엘렉트리치카를 이용하기로 한다.

아침 10시가 넘어 여유 있게 그라브니역으로 간다. 오전에 철도기관차박물관을 보고 오후에 CCCP박물관을 볼 계획이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우리는 역무원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기차시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오전 12시 15분은 되어야 시야텔 방면으로 가는 엘렉트리치카가 있다고 한다. 시야텔행 기차가 방금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두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어 급히 계획을 수정한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CCCP박물관을 먼저 보기로 한다. CCCP는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연방의 약자로, 소비에트시대 문화유산과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전시물의 수준은 높지 않지만 지난 100년간 러시아를 지배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유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방문할 가치가 있다. 기차역에서 걸어 20분 정도면 갈 수 있고, 1시간 동안 전시물을 살펴볼 수 있다.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연방 박물관 들여다보기
 

CCCP박물관 ⓒ 이상기

  
박물관 첫 인상은 너무 낡고 허름하다. 첫눈에도 인기 없는 박물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박물관 문이 닫혔다. 안내판을 보니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이거 정말 낭패다. 그런데 다행히 출근차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만난다. 그에게 부탁을 하니 문을 열어준다. 박물관 안에는 해설사가 있어 안내도 해준다. 그는 영어를 어느 정도 해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오히려 정성을 다한다.

우리는 그의 안내에 따라 전시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본다. 입구에 금칠을 한 레닌입상이 있다. 이르쿠츠크와 노보시비르스크를 여행하면서 레닌 동상을 수도 없이 봤다. 전시실로 들어가니 레닌흉상, 사진, 초상화가 함께 걸려 있다. 한쪽 방에는 동식물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곤충과 나비가 눈에 들어온다. 곤충은 풍뎅이, 하늘소, 집게벌레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나비 중에는 한국(Korea)에서 채집된 것도 있다.
 

레닌, 레닌, 레닌 ⓒ 이상기

  
소비에트시대 생활용품을 전시해 놓은 방이 있다. 턴테이블, 카메라, 냉장고, TV 등 수준 높은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50년대 사용하던 물품들이다. 버너, 전기플레이트, 커피머신 같은 주방용품도 보인다.

이들 역시 당시로는 최고의 제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1960년대 러시아는 미국과 대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던 도자기와 유리제품도 디자인과 투명도 등에서 최고 수준이다.

해설사는 우리에게 구권 러시아 지폐도 보여준다. 지금이야 지폐가 5루블부터 5,000루블까지 통용되지만, 옛날에는 1, 3, 5, 10, 25, 50루블짜리 지폐도 있었다. 그만큼 러시아 지폐의 가치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경제적 군사적 이유로 위기를 겪은 러시아 루블의 가치는 현재 1달러당 70루블대에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 옛날 지폐 ⓒ 이상기

  
한쪽 벽에는 러시아 청소년 단체의 푸른색 제복도 걸려 있다. 우리의 보이스카우트나 해양소년단 같은 조직의 유니폼으로 보인다. 그들이 단 배지에 레닌의 어린 시절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책상에는 등사판과 롤러 등 등사기구들이 놓여 있다. 한때 등사지에 글씨를 써서 시험지나 홍보물을 만들던 생각이 난다. 다음은 경찰서장실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간다.


해설사가 옷을 내주면서 그것을 입고 서장 책상에 앉아보란다. 두꺼운 겨울외투와 방한모자다. 견장에는 붉은색 천과 황금색별이 달려 있다. 책상에는 전화기 타자 그리고 서류철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보는 박물관일 뿐 아니라 체험하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옷을 입으니 영락없는 권력기관의 장처럼 근엄하고 냉정해 보인다. 이들이 한때 소비에트사회주의를 지탱하던 조직원이었다.

전기전자제품에서 자본주의 물결을 보다 
 

전기전자제품 ⓒ 이상기

  
다른 전시실로 가니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즐비하다. 6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Goldstar 수준이지만,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을 것 같다. 그 아래에는 릴테이프를 사용하는 영사기도 있다. 사실 방송과 영화 등이 사회주의 선전매체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 분야가 상당히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 아래에는 전축도 보인다. 턴테이블이 붙어 있고, 그 옆에는 비틀스 앨범도 꽂혀 있다.


비틀스의 음악이 당시 러시아에서도 인기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틀스의 '헤이 주드(Hey, Jude)'다. 비틀스만 있는 게 아니다. 롤링스톤스도 보인다. 러시아어로 'Роллинг Стоунз'라고 적혀 있다. 당시 러시아 젊은이들도 이들의 음악을 즐겼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서방세계처럼 학생운동, 히피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틀스와 롤링스톤스 LP판 ⓒ 이상기

  
다른 전시실에는 전화와 칼라 TV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전화는 대부분 다이얼식 전화다. 전기를 사용해 작동하는 기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전동기, 전기주전자, 전기믹서 등으로 보인다. 현대사회를 가능케 한 것이 수도와 전기이기 때문에, 러시아아가 한때 전기전자제품 생산에 주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제품을 생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준다. 80년대 들어 서방국가들이 전기와 전자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러시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시대 이르러 러시아는 개혁과 개방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중심의 자본주의 길을 가고 있다.
 

소비에트시대 전기제품과 전화 ⓒ 이상기

  
그러나 러시아가 아직 새로운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시스템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시대는 더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선지 기성세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시대를 그리워한다. 우리가 박물관을 나올 때 단체버스가 한 대 박물관 앞에 선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나이가 지긋해 보인다. 이처럼 CCCP박물관은 찾는 사람들은 과거의 향수에 젖은 노인들이다.

역으로 돌아가 엘렉트리치카를 타다
 

엘렉트리치카 내부 모습 ⓒ 이상기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CCCP박물관을 찾아온 길을 역으로 가면 된다. 그러므로 주변의 건물들을 더 잘 볼 수 있다. 올 때 보지 못한 예술극장, 인형극장 등이 보인다. 노보시비르스크 히스토리 센터(History Center)도 보인다. 이들을 보면서 여유있게 12시쯤 노보시비르스크 그라브니역에 도착한다. 대합실에서 우리가 탈 기차의 플래트홈과 선로를 확인하고는 고가를 통해 선로를 찾아간다.

시간에 맞춰 기차가 도착하고, 우리는 차에 오른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완행열차여서 역마다 서고, 타는 사람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큰 가방을 하나씩 들고 타는데, 이 기차는 다들 가벼운 차림이다. 마침 젊은이 옆에 앉게 되어 그녀에게 우리의 목적지 시야텔을 알려주고 내릴 때쯤 알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구글번역기에 나타난 러시아어와 한글 ⓒ 이상기

  
그러자 핸드폰을 꺼내더니 구글 번역을 통해 우리말 답변을 보여준다. 우리말 번역이 "너 언제 멈추게 될지 말해 줄게"다. 이 정도면 번역의 정확도가 80%는 된다. 구글앱이나 통역기 덕분에 정말 의사소통이 쉬워졌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철도 주변 도시의 모습을 감상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철도박물관이 있는 시야텔까지는 1시간이 조금 안 걸리기 때문이다.

기차가 조금 있다 엊그제 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을 지난다. 기차는 오비강을 건너지 않고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노보시비르스크 남부(South)역쯤부터 시내를 벗어난다. 오비강의 지류인 레카 이냐(Reka Inya)강을 건널 때 왼쪽으로 어린이공원과 천문대가 보인다. 시비르스카야역쯤 도착하자 차장이 나타나 표검사를 한다. 오비강을 따라 난 소도시들은 생활환경이 아주 좋아 보인다. 역이고 건물들이 아주 깨끗하다.
 

철도기관차박물관이 있는 시야텔역 ⓒ 이상기

  
기차에서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젊은이도 있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몇 푼씩 성의를 표시한다. 오랜만에 보는 진풍경이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시간에 빨리 간 것 같다. 기차는 유노스트, 니쥐냐 엘초프카역을 지나 1시 15분쯤 시야텔역에 도착한다. 날씨도 좋고 기온은 19℃로 쾌적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노보시비르크로 돌아가는 3시 40분 기차를 예매하고 목적지인 철도기관차박물관으로 향한다.
#CCCP박물관 #소비에트시대 #엘렉트리치카 #시야텔 #철도기관차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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