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평론집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
소명출판
- 최근 2권의 문학평론집을 출간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책을 잘 읽지 않는 시대다. 출간에 따른 소회가 있을 듯한데.
"책을 낸다는 것은 분명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책을 내는 일은 지난 시간의 삶과 문학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정리는 자부심보다는 자괴감을,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이번에도 비슷한 감정이다."
-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어떤 뜻에서 정한 제목인가.
"촛불은 누구나 알듯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광화문을 환하게 비춘 그 촛불을 의미한다. 나에게 촛불은 개인의 고유한 율동과 공동체의 보편적 대의가 어우러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오랜 동안 내 문학의 주제가 개인과 공동체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촛불은 그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으로 읽혔다.
등대는 연구년으로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외국에 머물면서 매혹되었던 등대를 말한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서서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불빛을 보내는 등대가 왠지 별다른 독자도 없는 '나'의 글쓰기처럼 느껴졌다. 두 개의 불빛이 이번 평론집을 쓰는 내내 나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 위의 책 서문에서 '문학은 사회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문장을 인용한다. 동의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문학은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걸까.
"사르트르가 말한 영구혁명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명제가 생각난다. 참된 문학은 결코 안주하지 않는 정신이다. 그렇기에 정치권력은 물론이고,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한 권력으로부터 늘 경원시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 원로에서부터 신진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세계에 접근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듯하다. '넓은 프리즘' 속 작가들을 해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것은 아무래도 당대 작가들을 주로 다루는 비평과 최소 한 세대 이전 작가들을 주로 다루는 문학연구를 병행하는 나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가능하면 한국문학사라는 거시적 시야를 전제로 개별 작가나 작품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럴 때만이 개별 작가나 작품의 고유성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로와 중진 그리고 신진은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일종의 거울이 아닐까."
천재 작가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에게 눈길...
- 한국문학의 중추가 30~40대로 바뀔 시기가 됐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희일비하지 않고 뚝심 있게 자기 세계를 밀고 나가는 작가에게 신뢰가 간다. 천재를 타고난 작가도 당연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여 자기 세계를 조금씩 밀고 나가는 작가에게 더욱 큰 눈길이 간다. 특정인을 거명하고 싶지는 않다."
- <한국 현대문학의 개인과 공동체>가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주요한 것 중 하나가 '공동체'인 듯하다. 이전에는 '공간'을 통해 문학작품 해석을 시도했던 바 있다. 공동체는 어떤 차원에서 '문학의 키워드'가 될 수 있는가.
"문학은 정치와 관련해 한 사회의 가장 민감한 자의식인 동시에 강력한 매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그 수많은 곡절로 인하여 문학에 더욱 강력한 정치적 기능을 요청하였다.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천으로서의 공동체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황이 한국 문학에서 공동체에 대한 탐구를 지속시킨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와 달리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는 이광수, 한설야, 임화, 김동리 등이다. 단순히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적'(혹은 후배로서) 이들의 문학에 관심을 둔 이유가 있을 텐데.
"늘 비평가와 연구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진리 탐구에 헌신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진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느냐는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었고 또한 제기되고 있지만, 연구자는 그럼에도 진리는 존재한다는 입장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국현대문학의 개인과 공동체'라는 주제와 관련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문학사적 대상들을 다루어 본 것이다."
- 남과 북의 작가들이 쓴 '황진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분석했다.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건가.
"김탁환이나 전경린처럼 남한 작가들이 그린 황진이는 나르시시즘적 모습을 보일 정도로 개인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북한 작가 홍석중의 황진이는 개인보다는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집단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과 기생이라는 이중 억압에 맞서 독특한 삶의 길을 걸어간 황진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것 자체가 상징계적 효력의 약화라는 200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남북이 공유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