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부’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은 김정우·박은순 부부. 노랗게 익은 벼가 추수를 기다리는 사이, 혹여나 새들이 배를 곯지 않을까 담장 아래 놓인 장독 뚜껑에 쌀알이 수북하다.
<무한정보> 홍유린
배고픈 새들에게 먹이를 챙겨주고, 오로지 새를 위해 농사를 짓는 이웃이 있다.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김정우(74)·박은순(73) 부부.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가을날,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작은 새들이 정성껏 준비된 하얀 쌀알을 먹는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산새들은 답례를 하듯 짹짹,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준다.
길거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고양이들에게 밥이나 간식을 챙겨주는 '캣맘'은 들어봤어도 새를 위해 농사를 짓는 '새부부'라니.
부부가 새를 위해 벼를 기르기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농사에 문외한이었던 부부가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 긴 시간 동안 자연과 함께 '벗'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자녀들은 어엿한 중년이 돼 이젠 더 교육시킬 아이들이 없는데도, 여전히 봄이 오면 어김없이 농사를 짓는 이유가 궁금하다.
"가을, 겨울이 되면 새들이 먹을 게 많이 없잖아요? 배고프게 돌아다닐 새들이 안쓰러워 계속 짓게 되더라고요. 농사라고 해봐야 벼 한두 단 정도 짓는 거라 겨우내 먹이기엔 양이 부족해요. 그러면 쌀겨도 주고, 쌀도 놔주고 하지요.
다들 어떻게 아는지 신기하게 찾아 오더라니까요. 참새, 산까치, 비둘기…. 새 종류는 몰라도 와서 한참을 먹고 가는 걸 보면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생각나 뭉클해져요. 소식 전해주러 놀러오는 거 같은 느낌? 괜히 한번 말도 걸어본다니까요. '배가 많이 고팠구나.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먹고 가라' 이렇게."
아내 박씨가 마음만큼이나 넉넉한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참새들의 방앗간처럼, 오가는 새들이 들르는 사랑방으로, 때로는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이곳에는 매년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한다.
풍족하게 준비된 먹이와 부부가 정성을 다해 관리하는 나무들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 식구를 맞기에 안성맞춤이다. 목청껏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고, 집안에 새들이 남기는 배설물이나 흔적이 지저분해 싫어할 법도 한데, 불편한 기색이 하나 없다. 말해 무엇하랴. 직접 둥지까지 만들어 둘 정도인데.
부부가 관심을 갖는 건 '새'뿐만이 아니다.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에게도, 빨간 바구니 속에 자라나는 연꽃과 우렁이들에게도 기꺼이 마음을 건넨다.
"우리가 불편하거나 힘든 건 하나도 없어요. 그냥 '자연'이라 받아들이고 지켜보는 거죠. 새도, 그리고 우리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 그 자체를 사랑하는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옛 선인들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요산요수(樂山樂水)의 가르침이 절로 떠오른다. 이미 그들은 '자연'의 일부다.
"새 때문에 취재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대단한 것도 없고 별 것 아닌데 이런 게 기사거리나 되나 싶네요."
부부의 표정에 염려가 한가득이다. 생명 하나하나 소중히 하는 예쁜 마음으로 '같이'의 가치를 묵묵히 실천하는 부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송수권 시인은 '까치밥'이라는 시에서 '긴 장대를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 까지밥 따지 말라 /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라 노래했다.
작은 생명도 귀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귀찮음과 수고로움도 마땅히 견뎌내는 사람들. 이들이 우리 곁에 있기에 예산은 살고 싶은 고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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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새 먹이 주는 부부 "사람만 사는 세상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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