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세 부산지검 검사.
박경세 검사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쁜, 가장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박경세 부산지검 검사(37, 변호사시험 2기)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거악"으로 정의했다. 2013년 검사가 된 이후 줄곧 보이스피싱 사건을 맡아온 박 검사는 "국정농단, 부패범죄, 기업범죄 등을 거악이라고 부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보이스피싱만큼은 우리가 꼭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 부산지검에서 만난 박 검사는 ▲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 미수에 그치더라도 계속 전화를 거는 등 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며 ▲ 끊임없이 범행 수법을 개발하고 ▲ 국민 대다수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보이스피싱을 "중범죄이자 악질범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총책부터 말단까지 각자 맡은 위치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범죄는 보이스피싱뿐"이라며 "보이스피싱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속도로 산업이 발전했다면 대한민국은 최강 선진국이 됐을 것"라고 말했다. 거꾸로 보이스피싱 범죄에서만큼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이야기다.
징역 20년,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 검사는 특히 2016년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근무할 당시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을 소탕한 바 있다. 해당 조직은 조직원 약 110명, 콜센터 11개를 거느린 대규모 기업형 조직이었다. 지금까지 적발된 보이스피싱 조직 중 최대 규모로 이들은 약 3000명의 피해자들로부터 약 54억 원의 범죄수익을 편취했다.
총책부터 말단까지 조직원 상당수가 검거됐을 뿐만 아니라, 총책이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아주 중요하다. 이는 박 검사가 총책 등 주요 피의자에게 ▲ 범죄단체조직죄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아래 특경법)상 사기죄를 적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단체를 구성해 매우 조직적으로 활동했음에도 대부분 말단 조직원만 검거되는 까닭에 범죄단체조직죄로부터 자유로웠다. 박 검사는 관련자들을 200회 이상 소환조사하고 대포통장 의심계좌 1000여 개의 거래내역을 전수 분석하며 해당 조직이 '기업형 범죄단체임'을 규명했다.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사건 중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 사례다.
또 그는 총책에게 일반사기가 아닌 상습사기를 적용해 특경법상 사기죄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개 보이스피싱은 피해자가 여러 명이라 특경법상 사기죄에 해당하는 편취금액을 충족하지 못해 비교적 낮은 형량의 형법상 사기죄로만 처벌받았다.
일반사기는 편취금액을 산정할 때 각 피해자별 편취금액을 별건으로 취급한다. 때문에 총 편취금액이 특경법상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는 5억 원을 넘더라도 한 피해자에게 5억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특경법상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상습사기는 모든 피해 사례를 별건이 아닌 한 건으로 보기 때문에 특경법상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 검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매뉴얼과 시스템에 따라 범죄를 저지른다"라며 "보이스피싱은 그 자체로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돌아가는지 설명했다.
"아침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지시사항을 주고받은 뒤 업무를 시작한다. 월화수목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전화를 건다. 사기미수도 범죄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팀장은 군대보다 더 심하게 모욕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두 시간 넘게 세워놓고 욕을 내뱉은 경우도 있었다.
팀장은 협박뿐만 아니라 적절히 칭찬도 하며 범죄를 독려한다. 그렇게 100명 넘는 사람이 동시에 활동한다. 웬만한 중견기업이다. 퇴근 후에도 숙소에서 서로 효과적인 범죄 방법을 연구하고 서로 문제점을 조언한다. 이렇게 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악질적인 조직은 보기 어렵다."
"칼로 찌르기 위해 먼저 약을 발라주는 악질적 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