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모함. 왼쪽이 미국의 존 C. 스테니스 항공모함. 오른쪽은 영국의 일러스트리우스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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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투기나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에 언제라도 투입할 수 있었으므로, 핵 부재 선언 이후에도 미국은 언제든지 남한을 핵무장시킬 수 있었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완전한 폐기를 요구하면서, 남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미군 핵무기 철거 정도로 상대방을 만족시키고자 했으니, 미국이 북한에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불신감 때문에 북한이 내건 제안이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론이다. 핵을 탑재한 전투기나 항공모함이 한반도 주변에 나타나지도 못하게 하고 한반도가 제3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도록 하는 핵의 무풍지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런 비핵지대는 북한의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인류 33%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낸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이 강지혜·고정선과 함께 쓴 보고서 '북한 핵무기의 위협과 대처 방안: 핵억지, 선제공격, 비핵화, 비핵지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거주 지역'이란 표현이 눈길을 끄는 보고서다.
"현재까지 인간거주 지역 내에 5개의 비핵지대조약이 체결, 발효되어 총 116개국, 전 세계 인구의 33%가 비핵지대 내에 있음. 지역으로 보면 중남미·남태평양·동남아·중앙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비핵지대조약이 발효되고 있음. 비록 비핵지대는 아니지만 북미나 EU 지역은 분쟁이 없는 안정적인 지역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핵지대에 속해 있거나 비핵지대는 아니더라도 분쟁이 없는 안정적인 지역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음." - 제주평화연구원이 2013년에 발행한 <JPI 정책포럼> 2013-6, 7, 8호에 수록.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북한 비핵화 및 북한 비핵지대화였다. 북한이 자체 핵무기를 없앤다 해도 북한이 외국 핵무기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의도하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나라 핵무기가 북한 영향권에 들어가지도 않는 것이다. 반면에, 노태우 정권과 아버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것은 남한 비핵화뿐이다. 남한 비핵지대화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이 같은 미국의 접근법은 남한 국민들의 이해관계와 상충된다. 남한 국민들은 한반도가 핵무기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되기를 원한다. 남한 국민들이 비핵화를 지지하는 것은 단지 북한이 핵을 갖는 게 무섭거나 질투나서라기보다는, 한반도가 핵전쟁에 휘말리는 게 두려워서다.
만약 '북한 비핵화(○), 북한 비핵지대화(○)/ 남한 비핵화(○), 남한 비핵지대화(×)'라는 방식으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계속 나선다면, 북한은 미국을 무한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북한 비핵화에도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 진행되는 남·북·미 3자의 한반도 평화협상이 앞으로도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남한 국민들이 일희일비하는 양상이 계속 되풀이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전망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남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을 무한정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상위에 미일동맹을 두고 있다. 미일동맹에 손상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한미동맹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계속 추진하게 되면,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도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일본을 이끄는 그들 집단이 한국에 대해 편치 않는 마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간에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한다면, 미국은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일본을 편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남한을 핵무기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하는 데는 관심도 없이 '북한 비핵화+북한 비핵지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접근법은 한반도 평화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할 뿐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시원하게 추진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이런 조건에서 한·일 간에 분쟁이라도 발생하면 남한 국민들의 안전까지 위태해질 수 있다.
이런 불안한 구도를 만든 것 중 하나가 1991년 12월 18일 노태우의 핵 부재 선언이다. 이 선언으로 증폭된 모순과 취약성을 해소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인간거주 지역' 전체를 비핵지대로 만드는 것이지만, 당장에는 한반도 전체를 핵의 무풍지대, 비핵지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전체를 비핵지대로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남북한을 위태롭게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가 비핵지대가 되려면 북한 핵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핵무기까지도 한반도를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계 정상급 강대국들의 핵 전력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세계사를 새로 쓰는 대형 사건이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1991년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말 몇 마디로 해결하려 했으니, 그런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한국의 안보가 얼마나 위태한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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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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