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 - 번외편] 고통 받는 나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저마다의 고통으로 찬 2018년... 그 끝엔 뭐가 기다릴까

등록 2018.12.31 10:09수정 2018.12.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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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에 아직도 '올해의 인물'(아래 올인)을 뽑는 회사가 있다. 저널리즘 역사로는 올인을 뽑은 게 채 100년이 안 된다. 미국 타임지가 뽑은 올인 1호는 1927년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던 찰스 린드버그인데, 타임지는 아직도 뽑고 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은 '진실을 밝히다 표적이 된 수호자들(guardians)'이 선정됐다.

<오마이뉴스>는 2000년 창간 첫해부터 올인을 뽑았다. 올인을 뽑는다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 누구나 '그 사람'하고 떠올릴 사람이면 좋겠으나 그런 사람은 많지 않고, 설령 선정한다고 해도 진부하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아직 올인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었던 2002년 다수의 미디어가 네덜란드인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를 호명했다).

지난 10일 부서에서 올인 얘기가 나오기에, 내 의견이 채택 안 될 것을 감수하고, '고통받는 나'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물론 채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철학적인' 제안을 하는데는 올해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이 작용했다.

[택시기사의 죽음] 어느 절박한 자가 떠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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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우기 씨 장례 거행하는 택시 기사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조합연합회 소속 택시 기사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 참석해 지난 10일 카풀영업에 반대하며 분신한 고 최우기 씨의 장례식을 거행하고 있다. ⓒ 유성호

 
모든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복잡하게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그분의 절박한 처지와 상관없이 차량공유서비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언젠가는 택시를 대체할 것 같다. 택시를 대체하기 전에 130년 역사의 자동차 문화 자체가 바뀔 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날 연말 모임이 있었는데 밴을 이용한 공유서비스를 써 봤다. 택시기사들에게는 안 됐지만, 밴을 모는 기사에게는 차량 공유가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전 기무사령관의 죽음] 광화문과 동화면세점 사이 


가치 판단을 하기 힘든 문제다. 다만 1990년 이름을 바꾼 이래로 기무사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죽는 순간까지 박정희 아들과 우연찮게 육사를 다니고, 그의 누나가 대통령을 재임하는 시기에 우연찮게 정보탐지를 주 업무로 하는 기관의 수장이 된 죄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의 반대편에는 고등학생 자녀들을 가슴에 묻은 수백 명의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죽음은 고귀하고 어느 죽음은 비루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근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대각선 방향인 동화면세점 앞에 차려진 기무사령관의 분향소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 모두가 불행하고, 불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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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8일 오후 서울시청 후문에서 서울교통공사 특혜입사 논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내년에 엄청난 반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 나온 단서는 미미하다. 그럼에도 사건이 이리 커진 것은, 취직이 어려운 시대에 내부자들끼리 작당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외부자의 불신이 바닥에 깔려있지 않나 싶다.

이 정부는 전 정부와 전혀 다른 기조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이 정부가 나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얼마나 유능함을 보일까에 대해 의구심을 품다가 언젠가는 마음이 많이 돌아설 것이다. 채용비리 사건이 설령 맹탕으로 결론 나더라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을 것이다. 취업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사이 서울교통공사 의혹을 정치쟁점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야당 원내대표 출신 의원이 딸의 채용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는 뉴스가 화제로 떠올랐다. 대중의 의심에 기대서 모처럼 정치력을 과시한 정치인이 이제는 그 의심의 제단 위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숙명여고 답안지 유출 사건] 그들도 억울할까

수험생 학부모가 아니라서 문제의 심각성을 덜 느꼈는데 고2·3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마치 자기 학교에서 있었던 일처럼 공분을 샀다고 한다. 행여 검경 수사가 쌍둥이들이 좋은 점수를 유지한 채 대입으로 가게 되면 그만큼 피해 받는다, 우리 학교라고 이런 일 없었겠는가,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할까? 쌍둥이와 그의 부친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으나, 마음 한켠에는 뭔가 더 큰 일을 덮기 위해 자신이 희생양으로 몰렸다는 생각은 있지 않을까?
 
[광주형 일자리] 기업 대 노동자, 이 오랜 싸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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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현대자동차 노조가 5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18.12.5 ⓒ 연합뉴스

 
최근에야 이 프로젝트가 울산에서 광주로 일자리 몇 개 떼어다 붙이는 게 아니라 완성차와 부품협력 업체들 사이의 봉급 차이를 줄이려는 원대한 함의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런데 물 건너갔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을 쥔 현대차 오너 일가에게 모든 비난을 퍼부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원칙'을 지키고 '현상 유지'도 지킨 노조를 정의롭다고만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 밖에도 한유총, 남북관계, 페미니즘(미투) 등등 열거하려니 끝이 없다.

다들 내 고통이 제일 크다고 악을 쓰지만, 우리가 모르거나 또는 이해할 생각조차 없는 현상의 이면은 항상 존재한다. 이른바 가짜뉴스의 발흥이라는 것도 '나의 고통'을 가장 잘, 극대화해서 표현해줄 수 있는 매체에 대한 대중의 기대심리가 작동한 게 아닐까 싶다.

이 끝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올해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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