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시리아 철수, 배신당한 민족이 있었으니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터키, '쿠르드족 공격' 의사... 험난해진 쿠르드족의 독립

등록 2018.12.26 11:33수정 2018.12.2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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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말 카슈끄지.
자말 카슈끄지. 위키백과
  
사우디 언론인 피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터키의 접촉이 활발해지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행정명령에까지 서명하게 됐다. 

이로 인해 당장 터키가 이익을 보게 됐다.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시리아 경내에 터키군을 투입해 쿠르드족을 진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경 밖 쿠르드족이 국경 내 쿠르드족에 영향을 줘 터키 중앙정부를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 미국-터키-사우디의 관계

지난 10월 2일(현지 시각)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뒤 토막 살해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러면서 터키와 사우디의 관계가 급냉했다. 터키 영토에서 사우디가 공권력을 행사해 살인을 범했다면 터키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니, 외교관계 악화는 당연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사건은 신속하게 봉합됐다. 미국의 태도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처음엔 사우디를 비난했던 미국이 10월 15일 미국-사우디 정상 간의 전화통화를 계기로 사우디를 두둔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사우디는 이스라엘보다는 못하지만 일본보다는 훨씬 중요한 동맹국이다. 중동 석유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뒷받침해주는 동시에, 석유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하는 체제를 떠받쳐줌으로써 달러의 권위까지 세워주는 나라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달러로 받은 석유 판매대금으로 미국 채권도 많이 매입해둔 나라기도 하다.

미국이 적극 나서는 가운데, 사우디에 대한 터키의 태도 역시 급격히 누그러졌다. 터키 당국은 '카슈끄지가 과실치사로 사망했으며 사우디 왕실과 관계 없다'는 확인까지 해줬다. 이로써 피살 사건이 봉합되는 가운데, 터키와 미국이 군사 분야에서 긴밀해지는 징후들이 나타났다.


'시리아 내 쿠르드족 민병대 공격' 의사 밝힌 터키 대통령

12월 17일에는 '터키 군대가 국경을 넘어 시리아 내 쿠르드족 민병대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트럼프의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다. 다음날 18일에는 35억 달러(한화 약 4조 원)에 달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를 터키에 수출하는 것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승인이 있었다. 터키가 MD를 사주는 대신 미국이 쿠르드족 공격을 묵인하는 거래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다.


그간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미군의 지원을 받으며 IS(이슬람국가)와 싸웠다. 그들이 IS와 싸운 것은, 미국의 적과 싸우는 데 동참해줌으로써 독립국가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링컨 대통령이 흑인 해방을 위해 싸웠듯이, 트럼프가 쿠르드족 독립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트럼프의 철군 결정은 그런 쿠르드족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다. 미국은 단순히 쿠르드족을 버리고 떠나는 정도가 아니라, 쿠르드족이 터키의 공격을 받도록 해놓은 상태에서 떠난다. 이만저만한 배신 행위가 아니다. 
 
 12월 24일, 링컨 초상화 아래에 앉아 있는 트럼프 대통령.
12월 24일, 링컨 초상화 아래에 앉아 있는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국가 없는 민족, 쿠르드족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의 '국가 없는 민족'이다. 인구가 2500만이라는 얘기도 있고 3000만이라는 얘기도 있고, 4000만이라는 얘기도 있다. 인구 규모로만 보면 결코 소수민족이 아니지만, 중동 각국에 흩어져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터키·시리아·이라크·이란 접경의 산악지대 즉 쿠르디스탄에 주로 거주한다. 지금의 쿠르드족과 문화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혈통상 이들의 조상으로 볼 수 있는 집단이 중동에 정착한 것은 기원전 7000년 이전이다. 이봉원 전 육군사관학교장이 쓴 <중동 쿠르드족 정치운동>은 이렇게 말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하였고, 그 이전인 기원전 약 7000년 전부터 쿠르드인들은 지금의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농경문화를 형성하면서 살았다고 추정한다."
 
중동 문명의 원형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하기 전부터, 쿠르드인들의 조상이 지금 땅에 정착해 살았다. 중동에 거주한 역사가 그처럼 깊은데도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 일반적 의미의 영토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채 흩어져 살았다.

물론 정치 조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국 형태로 나뉘어져 살아온 역사는 매우 길다. 오랫동안 이들이 소국 분립 상태에 머문 이유에 관해 위 책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거주해온 산악 고원지대는 지리적으로 오스만제국(터키)과 사파비제국(이란)의 접경 지역으로 이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더군다나 고원지대에 부족별로 거주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단일화된 통제체제나 문화가 형성되기 힘들었다."
 
터키와 이란이 쿠르드족의 국가 형성을 견제한 측면도 있고, 부족별로 고원지대에 거주하다 보니 중앙집권을 이루기 힘들었던 측면도 있다는 것.

중국 같은 거대한 땅이 960년에 세워진 송나라 이후로 더 이상 분열 경향을 보이지 않고 꾸준히 통합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는, 이곳이 넓은 평원이라는 점에 있다. 뻥 뚫린 평원에 있기 때문에 지방세력이 중앙정부에 맞서 독자 영역을 구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쿠르디스탄은 하나의 중앙 권력이 여러 지방 세력들을 통제하기 힘든 땅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분열 상태로 살면서 터키와 이란 등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쿠르디스탄. 색깔이 엷은 부분이다.
쿠르디스탄. 색깔이 엷은 부분이다.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약 100년 전 독립 희망 있었지만... 영국의 '뒤통수'

그런 쿠르드족에게 매우 희망적인 일이 근 100년 전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때였는데, 쿠르드족 독립의 최대 장애물인 오스만투르크가 이 전쟁에서 패배했다. 승전국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함에 따라 쿠르드족도 민족자결의 희망을 갖게 됐다.

이 전쟁에서 쿠르드족 일부는 영국·미국 등의 연합국 진영에 가세해 동맹국 진영인 오스만투르크와 싸웠다. 오늘날의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미국과 합세해 IS와 싸웠던 것처럼, 그때도 쿠르드족 일부는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연합국 편에 기꺼이 가세했다. 그 결과 연합국이 승리했으니, 쿠르드족이 윌슨의 제창에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은 당연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일제 식민 치하에 있던 한국인들에게도 희망을 줬다. 1919년 3.1운동 폭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 치하의 식민지에만 적용됐으므로, 애당초 한민족한테는 희망적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오스만투르크는 패전국이었다. 그래서 그 치하의 쿠르드족은 당시의 한민족보다 훨씬 더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었다. 2016년 12월 전남대 세계한상(韓商)문화연구단이 개최한 학술회의 때 발표된 파르비에브 스름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분석-쿠르드족 사례를 중심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동맹국 편에 섰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오스만제국에 속해 있던 비(非)터키계 소수민족에게 자치개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 8월 10일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의 지역적 자치를 허용했다. 세브르 조약 제64조는 쿠르드족이 원한다면 조약 발효 1년 이내에 독립적인 완전한 자치권을 터키 내에서 부여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세브르 조약을 통해 쿠르드족은 터키 동부에서 독립적 자치권을 갖게 됐다. 꿈에도 그리던 독립국가에 한걸음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일장춘몽이었다. 패전한 터키가 힘을 추스르고 승전국들이 태도를 바꾸면서, 쿠르드족은 뒤통수를 얻어맞지 않을 수 없었다. 세브르 조약이 휴짓조각이 되고 만 것이다.
 
"터키가 다시 국력을 회복하여 상황이 바뀌자, 1923년 연합국과 새로이 체결한 강화조약인 로잔 조약에서는 대부분의 쿠르디스탄 지역을 터키 영토로 규정하고,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건설과 지위 문제는 완전히 무시했다." - 위 발표문

당시의 세계 최강인 영국이 쿠르드족을 배신한 것은 터키가 국력을 추슬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유에 대한 욕심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쿠르드족에게 주기로 한 땅에 대규모 유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던 것이다. 위 발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영국은 대(對)오스만제국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독립을 요구한 쿠르드족의 주장을 처음에는 외면할 수 없어, 모술(Mosul) 지역을 국제연맹에 상정하여 합법적인 쿠르드 자치국가 건설이 일시적으로나마 검토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쿠르드 민족국가 건설에 암운이 드리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모술, 키르쿠크(Kirkuk) 등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유전이었다.

대규모 유전의 전략적 가치는 막대하였으므로 영국은 쿠르드의 자치안을 폐기하고, 1923년 7월 로잔조약(Treaty of Lausanne)을 통하여 쿠르디스탄을 시리아·터키·이란·이라크·아제르바이잔으로 분할하였다. 영국은 산유지인 모술 지역을 소국 이라크에 편입함으로써 더 많은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세브르 조약을 철회하였다."
 
현재의 미국은 터키가 MD 시스템을 구매해준 뒤, 터키의 적인 쿠르드족과의 동맹을 외면하고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을 묵인하고 있다. 지난 세기 영국은 뒤늦게 발견된 유전 지역에 욕심이 나서 쿠르드족과의 약속을 폐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최강들이 돈에 눈이 멀어 쿠르드족과의 신의를 저버렸던 것이다.

트럼프의 배신으로 인해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한동안 외로운 길을 걷게 됐다. 이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강대국들의 중동 전략이 조정되기 전까지, 이들은 독립국가를 향한 여정을 외롭게 이어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리아 철군 #쿠르드족 #세브르 조약 #로잔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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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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