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말 카슈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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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언론인 피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터키의 접촉이 활발해지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행정명령에까지 서명하게 됐다.
이로 인해 당장 터키가 이익을 보게 됐다.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시리아 경내에 터키군을 투입해 쿠르드족을 진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경 밖 쿠르드족이 국경 내 쿠르드족에 영향을 줘 터키 중앙정부를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 미국-터키-사우디의 관계
지난 10월 2일(현지 시각)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뒤 토막 살해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러면서 터키와 사우디의 관계가 급냉했다. 터키 영토에서 사우디가 공권력을 행사해 살인을 범했다면 터키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니, 외교관계 악화는 당연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사건은 신속하게 봉합됐다. 미국의 태도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처음엔 사우디를 비난했던 미국이 10월 15일 미국-사우디 정상 간의 전화통화를 계기로 사우디를 두둔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사우디는 이스라엘보다는 못하지만 일본보다는 훨씬 중요한 동맹국이다. 중동 석유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뒷받침해주는 동시에, 석유대금을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하는 체제를 떠받쳐줌으로써 달러의 권위까지 세워주는 나라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달러로 받은 석유 판매대금으로 미국 채권도 많이 매입해둔 나라기도 하다.
미국이 적극 나서는 가운데, 사우디에 대한 터키의 태도 역시 급격히 누그러졌다. 터키 당국은 '카슈끄지가 과실치사로 사망했으며 사우디 왕실과 관계 없다'는 확인까지 해줬다. 이로써 피살 사건이 봉합되는 가운데, 터키와 미국이 군사 분야에서 긴밀해지는 징후들이 나타났다.
'시리아 내 쿠르드족 민병대 공격' 의사 밝힌 터키 대통령
12월 17일에는 '터키 군대가 국경을 넘어 시리아 내 쿠르드족 민병대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트럼프의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다. 다음날 18일에는 35억 달러(한화 약 4조 원)에 달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를 터키에 수출하는 것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승인이 있었다. 터키가 MD를 사주는 대신 미국이 쿠르드족 공격을 묵인하는 거래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다.
그간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미군의 지원을 받으며 IS(이슬람국가)와 싸웠다. 그들이 IS와 싸운 것은, 미국의 적과 싸우는 데 동참해줌으로써 독립국가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링컨 대통령이 흑인 해방을 위해 싸웠듯이, 트럼프가 쿠르드족 독립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트럼프의 철군 결정은 그런 쿠르드족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다. 미국은 단순히 쿠르드족을 버리고 떠나는 정도가 아니라, 쿠르드족이 터키의 공격을 받도록 해놓은 상태에서 떠난다. 이만저만한 배신 행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