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제51조(탄력적 근로시간제) ① 사용자는 취업규칙(취업규칙에 준하는 것을 포함한다)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2주 이내의 일정한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 간의 근로시간이 제50조제1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에 제50조제1항의 근로시간을, 특정한 날에 제50조제2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게 할 수 있다. 다만,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정하면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 간의 근로시간이 제50조제1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에 제50조제1항의 근로시간을, 특정한 날에 제50조제2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게 할 수 있다. 다만,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52시간을, 특정한 날의 근로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 대상 근로자의 범위
2. 단위기간(3개월 이내의 일정한 기간으로 정하여야 한다)
3.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
4.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1주 48시간이었다. 하루 8시간씩 주 6일 근무제였다. 초과근무를 포함해 1주 최대 근로시간은 72시간이었다. 하루 8시간씩 주5일 근무제가 보편화 되었고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에 비하면 매우 긴 노동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마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경공업 중심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70년대 공장에서 법정 근로시간은 무의미한 규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약국에서 '타이밍'이라는 약이 불티나게 팔리고는 했다. 타이밍은 주로 공장에서 대량으로 구매했는데, 밤샘작업할 때 노동자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였다.
만들기만 하면 수출되었던 모직산업의 전성기, 중고등학교 다닐 나이에 공단에 들어와 미싱을 돌려야 했던 여공들은 회사에서 나눠주는 타이밍을 먹고 졸린 눈을 비비며 미싱을 돌렸다. 타이밍은 강력한 각성제로 밤샘작업할 때 먹으면 잠이 깨고는 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만 않았을 뿐 정신은 몽롱해져 타이밍을 먹고 밤샘작업을 하다 미싱 바늘에 손이 찔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전두환 신군부가 강제로 도입한 사용자들의 숙원 탄력근무제
하지만 점차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에 눈을 떠가면서 사용자에게 장시간 노동은 수익창출 수단임과 동시에 비용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 밤을 새워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면 돈을 벌 수는 있었지만 동시에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에게 점차 법정근로시간은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그들에게 아쉬운 것은 하나 더 있었다. 납기가 다가오면 밤을 새워가며 일해야 했지만 납기일이 지나고 나면 다소 여유로워진다는 문제였다. 한가할 때 일을 조금 덜 시켜 근무시간을 모아 놓았다가 납기일에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근로시간을 계산하는 단위를 1주일이 아니라 2주, 3주 또는 4주 정도 길게 잡고 평균 주 48시간만 맞추게 된다면 지급해야 할 초과근무수당이 크게 줄어들 것 같았다. 때문에 사용자들은 탄력근무제(당시에는 '변형근로시간제'라 불렸다)의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예컨대 4주에 한 번씩 납기가 돌아오는 공장에서는 비교적 한가한 1, 2주 때 일을 조금 덜 시키고 바쁜 3, 4주 때 몰아서 시켜 4주를 평균해 주당 48시간을 맞추게 된다면 초과근무수당을 발생시키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탄력근무제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초과근무수당이 박탈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용자가 부담 없이 초과근무를 시킬 수 있게 되어 노동자들이 만성 과로에 처할 위험도 컸다. 노동계는 탄력근무제를 강하게 반대했다.
1979년 12월 12일 박정희가 죽고 이듬해 전두환 신군부는 5월의 광주를 희생 삼아 정권을 잡았다. 1980년 10월 28일 전두환 정권은 국회를 해산시키고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했다. 국회를 대신해 입법활동 수행한 국가보위입법회의 1981년 4월 10일 해체될 때까지 189건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제정 또는 개정한 법률은 주로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 '대통령선거법', '국회의원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언론기본법'처럼 통치수단에 관련된 법률들이었다. 하지만 경제를 발전시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사용자들을 달래는 근로기준법의 개정도 포함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12월 31일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사용자들의 숙원이었던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 당시 도입된 탄력근무제의 기준 단위는 4주였다. 사용자들은 4주를 평균해 주 48시간을 넘지 않으면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노동계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고 사용자들 편의만을 위해 도입되었던 탄력근무제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고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가 만들어지면서 1987년 11월 28일 사라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1년 반 뒤인 1989년 3월 29일에는 법정 근로시간이 주 44시간으로 4시간 줄어들게 되었다.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다시 부상한 탄력근무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탄력근로제가 폐지되고 도입된 주 44시간 근로제는 오히려 다시 탄력근무제 논의를 부활시켰다. 주 44시간 근로는 이후 월~금요일까지 5일은 8시간, 토요일은 4시간만 근무하는 방식을 보편화시켰다. 그러자 두 주의 토요일을 합쳐 한주는 휴무하고 다른 한주는 8시간을 일하는 토요일 격주 휴무제가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토요일 격주 휴무제는 휴무인 주는 주 40시간을 근무하지만, 전일 근로하는 주는 주 48시간을 근무해 법정 근로시간인 주 44시간을 초과해 초과근로시간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주 단위의 탄력근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2주를 기준으로 평균 주 44시간을 충족시키면 초과근무가 발생하지 않아 토요일 격주 휴무제를 시행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던 토요일 격주 휴무제의 도입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도입을 꺼려했다. 노동계는 토요일 격주 휴무제를 통해 탄력근로제가 본격 도입되어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반면 사용자는 토요일 격주 휴무제가 장기적으로 주 5일 근무, 주 40시간 근로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노사는 1995년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시간을 주 42시간으로 줄이면서 토요일 격주휴제를 도입했고, 이는 이후 주5일 근무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민주화가 폐지한 탄력근로제, 김영삼 정부가 다시 도입
일하는 시간을 될 수 있으면 줄이려는 노동계와 최대한 일을 더 많이 시키면서도 비용은 절감하고자 했던 사용자 간의 줄다리기 속에서 탄력근무제도 주5일 근로제도 좀처럼 도입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 상태는 김영삼 정부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으로 깨졌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5시 50분 관광버스에 나눠 타 대기하고 있던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 의원 154명은 국회에 몰래 들어와 단 7분 만에 날치기로 11개의 법률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당시 근로기준법은 개정이 아니라 폐지 후 새롭게 제정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대폭적 수정이 가해졌고 대부분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들이었다.
민주·한국 양대 노총의 총파업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강력한 저항도 이어졌다. 그러나 노동법 개악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1989년 이후 7년이 넘게 섣불리 도입하지 못하고 있던 탄력근무제는 이렇게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도 없이 도입되고 말았다.
1996년 도입된 탄력근무제는 취업규칙에 정할 경우 2주,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통할 경우 1개월 내에서 평균 주 44시간을 준수하면 되었다. 이와 같은 1개월이라는 탄력근무제의 단위 기간은 2003년 4개월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당시 정부는 주당 근로시간을 4시간 줄여 주 40시간으로 하면서 동시에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려 했다. 이에 사용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정부가 사용자들에게 타협안으로 제시한 것이 탄력근무제 단위 기간을 3개월로 대폭 늘려주는 것이었다. 주당 근로시간이 4시간 줄어든다고 해도 3개월이라는 다소 긴 기간 동안 일이 적을 때 아껴 두었다가 바쁠 때 몰아서 시켜 초과근무수당의 발생을 억제하라는 논리였다.
전두환 정권이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일방적으로 도입했던 탄력근무제의 단위 기간도 4주였다. 2주 / 3개월이라는 탄력근무제의 단위는 엄청나게 길었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반발했지만, 사용자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탄력근무제의 확대는 주 5일 근무제와 맞바꿔 도입되어 그럭저럭 유지되어갔다. 그러나 탄력근무제를 둘러싼 사용자와 노동자의 갈등은 15년 후 다시 터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논란을 촉발시킨 것은 법정 근로시간이었다.
정부는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1주일에 16시간의 노동시간이 줄어들자 사용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용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다시 탄력근무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2주 / 3개월의 기준 단위를 4주 / 6개월로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전두환·김영삼 정부와 다른 길을 가기위한 방법
노동자들은 기준 단위를 6개월까지 늘리는 것은 사실상 주 52시간 근무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이고 일상적 과로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악화가 예상된다면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정부는 법정 최대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줄어드는 만큼 탄력근무제의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렇듯 탄력근무제의 도입 및 확대는 항상 법정 근로시간의 축소와 함께 논의되어왔다.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동시에 합법적 야근을 유도해온 것이다. 사용자에게 적게 일을 시키되 효율적으로 부릴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어찌 보면 탄력근무제는 전체 근무시간은 줄이되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연 2124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228시간) 다음으로 길다. OECD 회원국 평균 근로시간인 1770시간보다는 연간 354시간이나 더 긴 수치다. 한국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 자체가 효율성의 회복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효율성을 더하자는 것은 최소한 2018년 한국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지금까지 탄력근무제는 전두환의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위원회와 역대 최악의 날치기로 기록된 김영삼 정부의 날치기 사건을 통해서만 도입되었다. 그런 탄력근무제가 2017년 촛불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에서 대폭 확대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탄력근무제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시간의 축소와 합법적 과로를 맞바꿔왔다. 이번만큼은 온전히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촛불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과 과거 전두환, 김영삼 정부와 다른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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