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굴뚝농성이 영웅심 탓?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파인텍 노동자 최장기 고공농성

등록 2018.12.31 11:03수정 2018.12.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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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이 있다' 24일 오전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408일째 고공농성중인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왼쪽에서 두번째). ⓒ 권우성

 
75m 굴뚝에서 400일 넘게 진행되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을 영웅주의로 폄하하는 발언이 있었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진행되는 홍기탁·박준호 두 노동자의 농성을 두고 모기업 사장인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가 한 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세권 대표는 "불법 저지르고 굴뚝 올라가면 영웅이 되는가?"라며 "평생 제조업을 했지만 제조업 하면 언론에서 악덕한 기업인으로 몬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불법 저지르고"라고 했지만, 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신들이 지켜낸 일자리를 사수하기 위한 일일 뿐이다. 이들의 원래 회사는 경북 구미시의 한국합섬이었다. 2007년 8월 한국합섬이 파산하자 경영진도 없는 빈 공장을 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지켜냈다. 3년 뒤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플렉스는 한국합섬 노동자들이 근무할 파인텍이라는 자회사를 구미가 아닌 아산에 설립했다.

그 뒤 스타플렉스가 파인텍 가동을 중단하자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투쟁에 돌입했고 그 중 두 명이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 올라갔다. 이곳을 농성장으로 택한 것은 스타플렉스 본사가 1.9km 거리인 기독교방송(CBS) 건물 15층에 있기 때문이다.

29일자 <오마이뉴스> 이 추위에 75m 굴뚝농성, 왜 이렇게까지 하냐 하면 (http://omn.kr/1gacg)에 따르면, 청년한의사회 김지민 한의사는 농성장에 올라가 본 뒤 "굴뚝이 원형이라 기울어서 잠을 자니 다리 펼 공간이 없습니다"라며 "공장에서 굴뚝 사용할 때마다 떨림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는 열악한 공간에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며 극한의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굴뚝 올라가면 영웅이 되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 심한 일이다.

목숨건 고공농성을 정치투쟁 영웅주의 탓으로 돌리는 사용자


김세권 대표의 시각만 탓할 일이 아니다. 고공농성을 바라보는 일부 경영자의 시선에도 그런 인식이 묻어 있다. 고공농성을 영웅심에 빠진 행동으로 치부하는 경영자들이 있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2013년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사대책본부가 쓴 '새 정부에 바란다: 유행처럼 번지는 고공농성을 멈춰야 한다'라는 보고서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2013년 현재, 전국 각지에서는 '제2의 김진숙'을 꿈꾸는 이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농성을 진행 중이다."
-경총이 발행하는 월간 <경영계> 제404권에 수록.
 
대의를 위해 일신의 안전을 포기하고 고공농성을 감수하는 노동자들을 두고 '제2의 김진숙을 꿈꾸며 저러고 있다'는 식의 평을 한 것이다. 비슷한 시선은 경총 노사대책본부가 <경영계> 제403권에 쓴 '현대자동차 사내 하도급 문제, 고공농성이 아닌 대화로 해결해야'에서도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권익의 향상보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고공농성을 벌이는 것처럼 기술했다.
 
"현대자동차 사내 하도급 문제는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외부 노동운동 세력의 개입으로 개별기업 노사문제가 아닌 정치투쟁으로 변질된 것이다. 사내 하청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사내하청지회의 고공농성을 비롯한 불법투쟁은 지도부의 막가파식 정치투쟁에 불과하다. 지도부와 외부 노동운동세력들은 근로자들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고공농성 노동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막가파식 투쟁을 벌이는 것처럼 기술했다. 이처럼 일부 경영자들은 고공농성 노동자들을 제2의 김진숙을 꿈꾸며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몰아세우고 있다.

고공농성 같은 위험한 투쟁 방식이 권장돼서는 안 되겠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용자와의 대등한 관계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게 바로 이 고공농성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고공농성을 한다고 해도, 노동자들이 사용자보다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런 농성을 하게 되면, 노동자들의 불리함이 어느 정도나마 해소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지표면에서는 사용자들이 공권력의 지원 하에 일방적 우위를 누린다. 지표면에서 멀어질수록 사용자의 우위가 감소되기 때문에 고공농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가 고공농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1980년에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노사분규에 대한 제3자의 개입 금지를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에 명문화했다. 2007년까지 유지된 제3자 개입 금지 규정은 노동자들이 회사와 투쟁할 때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외형상은 노사 양측 다 외부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들만 받지 못하도록 했다.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노사분규가 벌어지면, 회사는 경영자 단체나 언론의 지지뿐 아니라 국가 공권력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 위의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지금 75m 굴뚝에 있는 홍기탁 노동자는 첫 직장인 한국합섬에 입사한 지 얼마 뒤 이런 일을 겪었다.
 
"수습기간 후 (1995년) 12월에 산재사고가 났고, 1996년 4월 38일간 옥쇄파업을 했다. 38일 동안 그는 한번도 공장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경찰들이 정문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들어오고, 헬기로 최루탄을 뿌렸다."
 
경찰의 개입은 물론 법적 근거 하에 이루어지지만, 이것이 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공정하다. 노동자를 위해서는 경찰이 쇠파이프를 들고 헬기로 최루탄을 뿌려주는 일이 합법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사용자를 위해서는 합법적으로 그런 일을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심히 부조리한 일이다. '합법'이 실은 합법이 아닌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이 제3자의 응원마저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황당하고 불공정한 일이다. 강자는 외부의 지원을 받도록 놔두고 약자는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2007년까지 시행됐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과연 문명 개화된 시대인가를 의심케 하고도 남을 만하다.

1980년에 그런 제도를 만들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대등한 권력을 갖기 힘들다. 군대와 경찰과 관료조직을 보유한 국가권력이 너무도 당연한 듯이 사용자 편을 들어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국가권력이 사용자 편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2014년 5월 18일의 '염호석 시신 탈취 사건'만 해도 그렇다. 삼성 측의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우던 중에 강원도 강릉 정동진에서 발견된 그의 시신을 노동조합의 수중에서 탈취하는 일에, 경찰 3개 중대 240명이 조력했다. 고 염호석의 시신이 반(反)삼성 투쟁에 쓰이지 않도록 하는 일에, 삼성 직원 240명이 아닌 경찰 240명이 동원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국가권력이 사용자를 편드는 것 자체도 부조리한 일인데, 시신을 탈취해준 대가로 삼성한테 뒷돈을 수수했다는 혐의까지 받은 경찰 간부들이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이런 경찰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12월 30일 밝혔다. 이 일은 국가권력이 사용자 편임을 보여주는 모래알처럼 무수한 증거들 가운데 '모래 한 알'에 불과하다.

심지어 국가권력은 사용자가 고용한 구사대나 민간 경비업체와도 일정한 협력관계를 가져왔다. 노동자를 돕는 제3자들에 대해서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사용자를 돕는 제3자들과는 우호적 관계까지 맺고 있는 것이다. 주성진 나사렛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논문 '노사분규시 경찰의 대응기준에 관한 연구'는 이렇게 말한다.
 
"경찰이 민간경비(구사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측과 일정한 정치적 타협관계를 갖고 있으며, 민간경비의 행태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묵인해주는 느슨한 연계 현상이 발견되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심지어 경찰이 노사분규에 개입하여 강제적 물리력을 남용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2007년에 <한국공안행정학회보> 제57호에 수록.
 
대한민국 정부의 공권력은 헌법 제3조 표현처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미친다. 이것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서 노동자가 자기 권익을 위해 싸울 때는 사용자뿐 아니라 대한민국 공권력의 영향도 받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공권력이 불편부당한 중립자라면 모르겠지만 사용자 편을 더 많이 들고 있으니,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발을 디디고 있는 한은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고공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리함을 그나마 줄이는 방법이다. 지표면에서는 국가권력이 사용자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공권력의 개입이 상당히 억제되는 고공에서만큼은 노동자들이 사용자와의 일대일 대결구도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물론 고공농성을 한다고 해서 국가권력의 개입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또 노동자와 사용자가 완전히 대등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고공농성은 노동자가 자신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지상에서 좀더 멀리 떨어진 데서 투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위험해서 권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유용한 투쟁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 개입 우려하지 않고 사용자에 맞서는 수단

 

농업노동자(혹은 소작농)들과 지주. 김홍도의 <타작>. ⓒ 퍼블릭 도메인

 

만약 조선시대에도 고층 건물이 있었다면, 그 시대 농업 노동자들도 같은 방식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그 시절에도 국가권력은 일방적으로 농업 사용자 즉 지주를 편들었다. 상당수가 노비 신분이었던 그 시대 소작농들은 지주와 대등한 협상을 벌인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대등한 협상을 하다 보면 언성이 높아질 수 있고 욕설도 나올 수 있는데, 노비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면 국가권력이 즉각 잡아갈 수 있었다. 조선시대 형법전 중 하나인 <대명률직해>에 이런 규정이 있었다.
 
"노비가 주인을 욕하거나 꾸짖으면 교수형에 처한다."
 
노비 출신 소작농이 수확량 배분 등을 놓고 주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주인의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할 수도 있고 주인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따져 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노비는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자신의 발언이 '주인을 욕하거나 꾸짖는' 단계로 발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잘못했다가는 관아에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인은 관아에 끌고 가지 않고도 노비를 죽일 수 있었다. 사전에 관청에 신고하고 노비를 죽이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랬으니 조선시대 노동자들도 할 수만 있었다면 고공농성을 선택했을 것이다. 관군이 함부로 대포를 쏠 수 없는 한양 시내의 고공 장소에서 농성을 벌인다면, 공권력의 개입을 우려하지 않고 사용자를 압박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건 간에 국가권력이 사용자를 편드는 이 부조리한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물론 권장돼서는 안 되겠지만 고공농성만큼 노동자들의 관심을 끄는 투쟁수단은 드물 것이다. 일부 사용자들은 '영웅심리 때문에 저런다'느니 '정치적 목적이 있다'느니 하면서 고공농성을 폄하하지만 이것은 국가권력의 개입을 우려하지 않고 사용자에 맞설 수 있게 해주는 얼마 되지 않는 투쟁수단 중 하나다.
#파인텍 #굴뚝농성 #고공농성 #제3자 개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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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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