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에 대한 슈퍼재정 비판? 오히려 더 써야 한다. 오죽했으면 보수적인 OECD가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을 보더니 '돈을 더 쓰라'고 이야기를 하겠는가." 지난해 8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자신의 학교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종철
- 얼마 전 일부 보수언론의 인터뷰 내용을 두고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쓴웃음을 지으며) 기사 제목에 나온 것만 보시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말하면서 강조를 하다 보니까, 맥락을 살피지 않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 언론 입장에선 '국가비상사태'라는 표현 자체에 끌릴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잘 알다시피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정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경제사회 정책이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추진돼왔다. 그렇게 20년이 지나보니 이제는 정말 경제, 사회적으로 우리 주변 결과들이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 보수진영에선 현 정부의 경제실패에 대한 '장하준의 경고'로 해석하고 있다.
"(고개를 저으며) 문재인 정부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난번 연구실에서 만났을 때도 말했지만) 지금 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1년 반 조금 넘었는데, 경제를 망쳤으면 얼마나 망쳤겠는가. 그렇게 경제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 몇천 원 올리고, 무조건 돈 덜 쓴다고 해서 경제가 무너지는 게 아니다."
그는 이어 곧장 "지금 문제가 뭐냐면"이라며 특유의 어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이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1997년 이후 20년정도 흘렀는데, 우리 경제산업정책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라가고 있는 거다. 금융시장의 개방을 비롯해 노동시장 유연화, 산업정책의 폐기, 여기에 정부는 돈 안 쓰는 게 좋다는 식으로 자린고비로 재정을 운영하고... 그나마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제3의 길'을 추구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아예 대놓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했지 않은가. 정말 이대로 계속 간다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 그래서 '국가비상사태'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자는.
"그렇다. 기본적으로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에서 이런 정책이 계속되면서, 출산율은 세계 최저에다가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처럼 교육 문제도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지 않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을 통해 태어나지 않았나. 물론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단시간에 바꿔서 성과가 드러나긴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파악하고, 궤도를 수정해서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해 가야 한다고 본다."
"유시민 선배, 존경했던 분... '혹세무민' 지적에 마음 안 좋아"
- 진보진영에서도 장 교수의 발언을 두고 말들이 나왔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혹세무민하지 말라"고도 했다.
"유시민 선배는 사실 저희 학생 때 민주화운동 리더 중 한 분이었고 존경하는 분이었다. (잠시 생각한 후) 그런데, 자신과 의견이 좀 다르다고 '혹세무민'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에는 마음이 썩 좋지 않다. 그런 식이라면, 옛날 군부독재시절에 정부와 조금 다른 얘기만 하면 '유언비어다', '좌경 논리다'는 식으로 몰아갔는데, 그런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장 교수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이어 유 이사장이 '대안을 내놓고 비판하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당연히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내가 말하는 산업정책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 해설하는 사람에게 '너가 그렇게 잘 알면 직접 공을 던져봐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도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한숨을 내쉬며) 아직까지도 산업정책을 이야기하면, 마치 과거 박정희 시대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 제조업 등이 발달한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 산업정책을 추진한 것은 우파였지만, 그 내용을 보면 좌파 정책이다. 시장의 한계와 실패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경제 동력을 키우는 거다. 또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람들 많이 다치지 않게 정책적으로 도와주는 것, 이런 논리는 우파가 아닌 좌파 논리다."
장 교수는 "지금 보수 쪽에선 문재인 정부가 급진적이어서 경제가 망한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오히려 현 정부가 너무 좌파 정책이 없어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통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교수께선 그동안 복지에 대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해왔다.
"맞다. 예전 노무현 정부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도 '복지국가'를 구호로 내놓지 않았나.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지고, 결국 또 구호로만 그치고... 보수 쪽에선 여전히 복지를 하면 나라 재정이 거덜 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복지를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보수는 복지를 아직도 모른다...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돈 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