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헌정 초유 피의자로 소환재판개입, 블랙리스트 작성, 법조비리 은폐, 비자금 조성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소환되고 있다.
유성호
"검찰에서 수사한답니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8년 6월 1일, 자택 근처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법원의 재판은 신성하다"라며 자신과 법관들의 결백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 정점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그런데 그는 검찰 포토라인 대신 친정인 대법원 앞에서 소회를 밝혔다. 그러자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제 포토라인 악습도 걷어내자'라는 글을 올렸다. 포토라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이자 "현대판 멍석말이"라는 지적이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지난해 6월 검찰이 본격적으로 사법농단 수사에 착수한 이후 몇 차례 반복된 장면이었다.
법원의 자기비판, 성찰인가 방어인가
"우리가 그동안 너무 압수수색 영장을 남발한 게 아닌가 싶다."
한 고위법관이 사법농단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꺼낸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을 두고 박근혜 정부와 교감한 정황을 포착해 피의자인 전·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잇따라 기각했다.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다',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그대로 재판했다고 보기 어렵다' 등 납득하기 힘든 이유였다. 법조계와 언론은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며 비판했다.
그런데 이 고위법관은 "압수수색은 피의자 망신주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 수사기관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과도하게 영장을 청구하는 사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도 지난해 10월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했다.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장발부의 남용을 막기 위해, 즉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이유를 살피기 위해 마련된 절차다. 그러니 최 법원장의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옳은 말이다.
일부 판사들은 검찰에서 자주 있었던 밤샘조사도 비판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소환돼 밤샘조사를 받은 다음 날, 강민구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밤샘수사, 논스톱 재판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법원이 밤샘수사로 작성된 조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밤샘조사는 이전부터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고, 이 때문에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만 실시할 수 있게 바뀐 지 오래됐다. 그러니 강 부장판사가 비판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시 지극히 옳은 말이다.
지극히 옳은 말들... 근데 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