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루카 교회이콘화와 프레스코화의 수호성인인 사도 루카에게 바쳐진 교회이다
노시경
성 루카 교회는 코토르에 닥친 다섯 번의 지진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행운의 교회로도 유명하다. 특히 코토르에서는 유일하게 1667년과 1979년의 대지진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른 교회들은 무너졌는데 이 교회만 살아남았으니 모두들 이 교회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대지진을 피해 간 이 교회는 수백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더 소중하게 보인다.
성 루카 교회는 8백 년이 넘는 건축물 자체의 역사 외에도 큰 의미를 가진 곳이다. 17세기 중반까지 가톨릭 성당과 학교로 사용됐던 성 루카 교회는 정교회 신도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정교회 교회로 바뀌었던 것이다. 오랜 전쟁을 통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 땅에서 물러난 이후 세르비아 정교회(Orthodox)를 믿는 인구가 코토르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정교회 신자들이 이 교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놀라운 종교적 포용성은 성 루카 교회 내부로 들어가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한 교회 내부에 2개의 제단이 남아 있는 것이다. 12세기에 만들어진 가톨릭 제단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옆에 정교회 제단이 마련돼 있다. 가톨릭과 정교회가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두 종교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이 교회는 복잡한 역사로 얽힌 몬테네그로와 코토르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 벽면에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초기의 성화는 남쪽 벽 일부에 남아 있었다. 색 바랜 성화 속의 성인들은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외국의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쪽 벽 외에 다른 벽에 남아있는 성화들은 대부분 17세기에 그려져서 화려한 느낌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이 정교회 계열의 성화들은 한국인들에게는 약간 낯선 이콘 성화여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교회 내부의 바닥을 살펴보다가 흠칫 놀랐다. 교회 바닥에 코토르 시민의 무덤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이 교회에 묻힌 시민들의 이름과 생몰년도가 기록돼 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성 루카 교회에서 시민들의 장례를 거행하고 교회 안에 매장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종교를 믿게 마련이고 죽을 때에도 종교 안에 묻히기를 희망할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기능은 세계 어디를 가나 동일한 것 같다. 이러한 종교적 역사성 때문에 성 루카 교회는 코토르 시민들에게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코토르의 시민들 중에서는 동방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이 70%로서 가장 많다. 이슬람을 믿는 시민들도 21%나 되지만, 가톨릭을 믿는 시민은 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코토르에서의 가톨릭 인구는 줄어들어서 대부분의 가톨릭 교회는 이제 정교회 교회로 바뀌었다. 구시가 안의 교회 11곳 중에서 가톨릭교회로 남은 곳은 트리폰 성당(St. Tryphon Cathedral) 한 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