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로스쿨 4기인 오현정 변호사는 자신이 재학중인 당시만 해도 국제인권 모의재판대회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예비법조인 양성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변호사시험 학원이 된 현 로스쿨에서 이런 활동은 학생들에게 '사치'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현정
그런데 내가 졸업하고 겨우 1, 2년 지난 시점부터 후배들은 2학년이 되자마자 변호사시험 준비에 대한 압박으로 자신의 관심사나 진로를 위해 다른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더라. 로스쿨생들의 참여가 활발했던 국제인권 모의재판은 대학원 부문에서 지원자가 없어지더니 올해는 결국 폐지됐다. 그만큼 시험 운영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제도의 본질적 목적과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 이후가 더 문제"
- 법무부의 변호사시험 운영을 비판하는 이유는?
"로스쿨 재학 당시에도 법무부 앞에서 항의 집회에 참여한 만큼 잘못된 시험 운영, 그로 인해 점점 더 잘못되어 가는 제도 운영에는 법무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졸업한 뒤에도 법무부의 제도 운영은 가관이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는 법무부에서 뜬금없이 법률로 이미 예정된 사시 폐지에 관해 유예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발표해 로스쿨생들이 거세게 저항한 적도 있었다.
당시 법무부의 무책임한 발표에 찬동한 변협 등 기득권들은 '로스쿨에 입학하지 않은 사람도 변호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마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장인 것처럼 포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의 배경이나 출신 학교 구성이 사법시험 때보다 오히려 다양해진 점, 사법시험 시절에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던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장학금 지급 등 배려가 강화된 점은 도외시한 것이었고, 실상은 사법시험 출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제도 변화 과정에서 법조인 배출 수를 더욱 줄이기 위한 시도였다고 본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 법무부장관이었던 김현웅, 국회에서 가장 열렬히 사시 존치를 외쳤던 김진태 모두 사법시험을 통해 배출된 검사 출신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더욱 문제라고 느낀 것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 이후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참여정부 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활동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당시 사법개혁과 로스쿨 도입에 관해 실무를 총괄한 사람이라, 제도에 관한 기본적 이해도도 높고 책임감도 클 거라고 생각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또한 로스쿨 교수로서 사법개혁으로서의 로스쿨 도입과 운영 경과를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로스쿨 도입 초기부터 3000명 이상의 입학 정원,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에 대해 여러 차례 의견을 밝히고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러니까 현 정부 주요 인사 대부분이, 로스쿨 제도 도입 및 운영 과정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인 거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지방 로스쿨 시험장 확대, '오탈제도' 예외 사유 확대 등 몇 가지 실무적인 문제들만 일부 다루었을 뿐, 정작 로스쿨 제도 정상화에 가장 중요한 변호사시험 자격 시험화라는 과제에 관하여는 완전히 침묵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법무부는 초기부터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하고 '총점 720점' 이상 면과락자들에게 변호사 자격이 있다고 보았으며, 5회 정도 운영한 뒤에 합격 기준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시점까지 어떠한 재검토도 없이, 시험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일선 학교들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무비판적으로 '1500명대'라는 아무 근거 없는 기준만 답습하며 합격자를 결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합격 커트라인은 900점에 육박하고 있다. 기수별 형평성 문제까지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지난 10월에는 법무부장관이 나서서 현행 변호사시험 합격률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 취지의 인터뷰까지 하였고 이것이 법무부의 공식적인 온라인 공간에 게시되기도 하였다. 장관의 문제 인식 수준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지극히 경솔한 발언이었고,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현직 변호사 중 아무도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기에, 법률신문에 <로스쿨 도입취지 몰각한 법무부 장관의 팩트체크>라는 칼럼을 썼다.
나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참여정부에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이유를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고찰하고,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법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 체제는 높은 시험점수를 기록한 사람들에게 승승장구 출셋길을 열어주었다. 합격의 대가는 지나치게 달았지만 불합격한 사람들은 철저히 잊혔기에, 점점 더 경쟁은 심해졌고 모두가 그 경쟁의 승리자들을 선망했다.
그런데 선망 받던 그들이 형성한 법조계의 모습은 폐쇄적인 특권의식, 부정부패, 전관예우, 기득권 카르텔 등으로 얼룩졌다. 권력과 자본을 지닌 사람들은 그들의 그럴듯한 언변을 힘에 입어 더더욱 승승장구했지만, 권력과 자본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가장 힘들고 어렵고 비참한 순간에도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믿음은 불식되지 않았다. 한국의 사법신뢰도는 여전히 최악이다. 현재진행형인 사법농단 사태 또한, 특권계급화 된 법원 내 엘리트들이 조직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 법과 양심에 대한 재판이라는 소중한 헌법적 원칙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 그 본질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한 법조인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판사와 검사는 권력과 자본의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법적 판단을 해야 하고, 변호사는 권리를 지키고 부당한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시험성적, 그것도 눈 감고 귀 막고 경쟁에만 몰입하며 공동체와 소통하고 연대하는 법은 잊은 채, 수험 서적만 파고들어 수험 기술에 집중해야만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의 성적만을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했던 것부터가 잘못 아닐까? 법치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조력자 역할을 하는 법조인이 '용'으로 인식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참여정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답이 바로 로스쿨 도입이었다. 법조인을 오로지 시험성적으로만 선발하고, 사법연수원이라는 폐쇄적 시스템에 가두어 특권적인 동류의식을 형성하게 했던 사법시험 제도의 폐단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다.
로스쿨 제도는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분야별로 특성화된 로스쿨의 교육을 통해 법조인으로서 가져야 할 지식과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사회적 취약계층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졸업 후 치르는 변호사시험은 객관적으로 변호사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는지 평가하는 자격시험의 형태로 운영하여 국가나 기득권에 의한 인위적인 정원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또한 전반적으로 변호사의 수를 늘려 그동안 법적인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법률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야 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법조인이 특권계층으로 인식되지 않고 '적성과 흥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법조인이 더 이상 '용'이 아닌 세상, 법을 몰라 억울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개천에 녹아들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참여정부에서 로스쿨 제도를 통해 꿈꾼 세상이었다.
이러한 이상과 목적은 분명히 옳다. 기본적인 제도의 설계나 방법론 또한 큰 틀에서 맞다고 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도 운영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과 개선인 것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변호사시험을 극복해야 할 낡은 제도인 사법시험처럼 운영하여 로스쿨 도입 취지를 형해화시켜 왔다. 로스쿨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려면,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운영하여 각 학교들이 특성화된 교육을 하고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가정 형편 때문에 선택의 제약을 느끼는 사람들도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장학금 제도를 확충하고, 특별전형 제도도 진화시켜나가야한다.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는 입학 과정에도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할 거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변호사 배출 수는 물론 로스쿨 입학 정원 또한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위적인 수량 통제로 인해 형성되어 온 변호사의 특권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권력과 돈을 추구하기 위해 법을 이용하고, 법조인의 지위를 이용해온 사람, 그래서 사회적 폐단을 초래해 온 사람들도 줄어들지 않을까? 진짜로 법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만 남지 않을까?
"법조 시장이 포화 상태? 변호사가 필요한 곳 너무 많다"
- 변협은 법조 시장이 어려워서 법조인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법조 시장이 포화상태다. 즉, 법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는 변협의 계속된 주장은 이익단체로서의 주장일 뿐이다. 그런데 변호사에 대해 전문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변호사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소득을 보장하기 위함일까? 변호사 자격증 제도는 변호사가 다른 사람을 대리하여 활동하는 만큼 어느 정도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일 뿐이다. 제도를 통해 공익을 실현해야 하는 국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변호사들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 법조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률서비스의 부익부 빈익빈'이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법률서비스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고 풍부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변호사가 항상 아쉽다. 대기업은 수 백 명의 사내변호사를 두고 수 십 개의 자문 로펌과 계약해서 A부터 Z까지 철저히 법률검토를 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반면, 중소기업, 자영업자, 스타트업은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변호사에게 계약서 검토를 맡겨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현대판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계약들이 버젓이 체결되고, 일을 하고 대가를 받기는커녕 막대한 위약금 청구를 당하는 억울한 사례들이 차고 넘친다.
실제로 영세한 업체나 개인을 대리하여 소송을 해보면, 의뢰인이 굉장히 억울해 하고 변호사와 판사 또한 안타까워하는데, 계약 자체가 불리하거나 증거가 너무 부족해서 소송을 통해 구제하기 어려운 사례가 상당히 많다. 분쟁이 심화되기 전에 좀 더 쉽게 변호사의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위험인데도, 한 번 일이 잘못되면 서민들에게는 파산과 폐업의 원인이 되는 거다. 아직 변호사가 필요한 곳이 너무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