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툴 북>, 문예춘추사, 2019
문예춘추사
소유와 무관하게 집을 지니고 살아가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금방 지은 새집도 가끔 이런저런 말썽이 생기는데, 오래된 집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이 들면서 사람이 이래저래 부실해지듯 집과 가재도구도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말썽 나는 족족 그걸 해결하기 위해 전문 기술자를 부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부득이 사람들은 공구를 하나씩 마련하고, 그걸로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경험 없는 얼치기 생활인이 그걸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생활이 공구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목마른 이가 샘 판다고 어설프게 공구를 찾아 들긴 했지만, 정작 그걸 운용하는 게 적지 않은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당장 콘크리트 벽에다 못을 한 번 박아 보라.
한때, 꽤 무게가 나가는 쇠망치로 가격해도 못을 튕겨내는 콘크리트 벽의 견고함 앞에 낭패한 이들을 구제해 준 게 '탱크팡'이라는 이름의 특수 망치였다. 피스톤을 이용하여 정확한 위치에다 못을 박을 수 있게 해주는 이 망치의 덕을 본 이들이 반드시 주부뿐이었을까.
전문기술자들이 '프로페셔날하게(!)' 허리에 주렁주렁 차고 다니는 각종 공구는 전문가의 권위를 위한 소품이 아니다. 어렵사리 공구를 써본 이들은 그게 문제를 빨리, 그리고 수월하게 해결해주는, 이른바 '싱크로율' 100%의 '판타스틱 툴'이라는 걸 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삶의 장면은 예측할 수 있는 것만 있지 않다. 펜치나 드라이버, 프라이어와 멍키 스패너(어저스터블 렌치)만 갖추어도 될 듯한 가정용 공구가 하나씩 늘게 되는 것은 물론 그러한 예측을 불허하는 생활이 주는 가외의 선물이다.
소켓 렌치와 전기인두, 건 태커까지 갖추게 된 어느 날, 우리는 강력한 힘으로 타격하여 콘크리트에 구멍을 내어주는 해머 드릴을 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른바 '장비병'의 단계로 진입하는 조짐이다.
그러나 장비병은 단순히 특수 공구를 가지고 싶어서 빠지는 단순한 '뽐뿌질'이 아니다. 그건 그간 닦고 익힌 '생활의 기술'이 한 단계 상승하고 있음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더 나은, 더 고차원의 공구를 원하는 것은 그것을 일정하게 운용할 수 있는 자신감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자기 공작사(工作史)의 신세계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관련 기사 :
'장비병' 단계를 지나니 'DIY' 신세계가 열렸다)
DIY, '기술 대중화', 혹은 기술 소외로부터의 해방
그러나 고기능의 값비싼 공구를 마련하는 것과 그 물건을 제대로 운용하는 능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십 년도 전에 독일산 충전 드릴을 장만했지만, 나는 근년에 와서야 그걸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러 겹으로 접는 종이에다 그림 몇 개가 고작인 불친절한 사용설명서도 그렇거니와, 그걸 제대로 사용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갖가지 용도로 쓰이는 가정용 공구의 사용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는 책이 있는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궁금하고 막힐 때마다 인터넷에서 디아이와이(DIY) 선배들의 시공 경험담으로 간신히 길을 찾고 요령을 익혔을 뿐이다.
"당신이 직접 만들어라! (Do It Yourself)"
DIY는 "전문 업자나 업체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직접 생활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고 수리하는 개념"이다. 1940년대에 영미에서 시작되고 퍼진 이 개념은 일종의 '기술 대중화'를 축약하는 명제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집 안팎을 공사할 수 있게 된 DIY로 표상되는 기술의 대중화는 기술의 칸막이에 막힌 기술 독점, 혹은 기술 소외로부터 일반인을 해방한 사례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꼼짝없이 전문가를 불러 적지 않은 품삯을 주어야 했던 가장들이 가장 먼저 손을 털고 나섰다. 이미 대중화되고 있는 장비를 마련한 이들은 다소 서툰 솜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직접 뛰어든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가정에서 DIY는 일상으로 접어드는 추세인 듯하다. 사회 변화에 따라 1인 가구가 늘어난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런 작업을 남편에게 맡겨온 주부들도 DIY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