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요사채요정으로 쓰인 길상사는 수많은 ‘별채’가 있다. 지금은 기도처와 요사채로 쓰이지만 요정 시절 밀실 야합과 향응이 펼쳐지던 현장이다. ‘요정 공화국’ 대한민국의 과거를 증언하는 곳이기도 하다.
백창민
1960년 박정희가 주도한 5.16 쿠데타는 행동 개시 5시간 전 정보가 미리 새서, 요정 '은성'에서 회식 중이던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에게 보고된다. 은성에 있던 장도영은 안이한 대처를 하는데, 그 때문인지 박정희는 쿠데타에 성공한다.
5.16 쿠데타 후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은 민정 이양에 대비해 비밀리에 민주공화당 창당을 준비한다. 김종필은 대학 교수와 강사를 창당 요원으로 선발, 1962년 4월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중앙정보부가 창당 요원 교육을 실시한 곳은 종로구 낙원동의 요정 춘추장이다. 요정이 정당 탄생의 산실이기도 했던 것이다. 요정 춘추장이 있던 건물은 해방 직후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이 본거지로 쓰던 곳이다. 길상사 전신인 대원각도 남로당을 이끈 박헌영과 관계 깊은 요정으로 알려져 있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스님은 대원각 실제 소유주가 박헌영 일가였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1970년 3월 17일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승용차에서 숨진 정인숙은 고급 요정 선운각 출신 호스티스다. 그녀가 남긴 세 살 아들이 최고 권력자 자녀라는 소문 때문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1970년대 삼청각은 한꺼번에 500-6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초대형 요정을 개업한다. 개업식에 이후락 부장을 포함, 중앙정보부 요원 50여 명이 참석했고 인기 연예인이 대거 출동했다. 중앙정보부는 요정에서 오가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미림'이라는 팀을 따로 뒀다.
산업화 시대 요정은 밀실 접대와 밀실 정치의 온상이었다. '요정 정치'라는 말도 이때 등장한 말. 기생관광이라는 '외화 벌이'를 위해 국가는 요정 산업을 적극 양성했다. 박정희 정권은 한국관광공사의 전신 국제관광협회에 '요정과'를 설치, 관광기생에게 접객원 증명서를 발급해서 통행금지 상관없이 호텔을 출입하며 일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전두환 정권은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11개 대형 요정 업체에 총 20억 원을 특별융자로 지원한다. 외국 관광객용 지도에 요정 위치를 다국어로 상세히 표시해 '기생관광'을 적극 장려하기도 했다. 누구 말처럼 '대한민국 정부가 포주'였다. 사창가라 불린 집창촌과 함께 요정은 한국 섹스 산업의 한 축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요정 수는 870여 개에 이르렀다. 이후 강남 룸살롱에 밀려 수가 줄기 시작해서 한정식집 등으로 변모했다. 대원각, 삼청각 같은 대표적인 요정도 1990년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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