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제로페이 10만번째 가맹점인 역사책방에서 시연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시범서비스에 앞서 작년 10월 29일 가맹점 모집을 시작한 결과 5개월 만에 가맹점 10만호(4월 1일 기준)를 돌파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쓸 수 있는 행정력을 이런 식으로 총동원하면, 제로페이의 사용 건수와 액수가 한동안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여기까지다.
제로페이가 성공하려면, 소비자들이 신용카드에서 제로페이로 소비 형태를 바꿔야 한다. 제로페이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는 자영업자들이 "웬만하면 제로페이로 결제해주세요", "제로페이 결제하면 이러저러한 혜택을 드리겠다"고 소비자를 꾀거나, 소비자 스스로 제로페이를 써야 하는 '확실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가 결제 수단의 '대세'가 된 것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쓰게 해서 자영업자들의 세원 포착을 더 쉽게 하려는 용도로 김대중 정부가 마련한 것이 1999년 8월 시행한 신용카드의 연말정산 소득공제였다. 지난 20년간 신용카드는 소득공제율 10~20% 사이를 오르내리며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민간소비지출에서 카드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데는 소득공제 실시 후 10년이 걸렸다(2009년 52.8%, 여신금융협회 자료). 지난달 13일 정부·여당이 올해 말로 끝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3년 더 연장하기로 한 것도 직장인들의 신용카드 습관을 단기간에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제로페이 아무리 열심히 결제해도 소득공제액이 '제로'
서울시도 제로페이 도입 단계에서 신용카드와 같은 소득공제를 적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활성화 수단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해 연말 제로페이 서비스가 도입될 때 서울시는 '착한 서울시민, 당신에게 47만원이 돌아옵니다'라고 광고했다. "연소득 50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제로페이로 2500만 원을 결제하면 연말정산시 신용카드(47만 원)보다 많은 75만 원을 돌려받는다"는 계산법은 소득공제 40% 적용을 가정한 것이었다.
지금은 제로페이를 아무리 열심히 결제해도 소득공제액이 '제로'다. 금융전문가 길진세씨는 "소상공인들을 살리기 위해 제로페이를 써야한다는 메시지는 선하지만 소비자는 냉정하다"며 "서울시가 이런 홍보 전략은 접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제로페이법)은 제로페이에 신용카드(15%), 체크카드(30%)보다 높은 40%의 소득공제율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 연 소득의 25% 이상을 제로페이로 결제해야 하고 ▲ 소상공인 점포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소득공제 40%'가 가능하다. 그런 악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일단 '제로페이 소득공제'로 이익을 보는 소비자들이 나와야 제로페이에 활로가 열릴 것이다.
문제는 입법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
김태희 서울시 경제일자리기획관은 18일 오후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법령 개정이 진행 중인데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 일자리수석에게 "제로페이는 소상공인 자영업 핵심정책인데 왜 이렇게 (사업 추진이) 더디냐"며 "일자리수석이 직접 챙겨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던 시대에는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곧 법이었고, 국회에서 그대로 관철됐다.
그러나 '날치기 법안 통과'와 '의회 내 폭력사태 방지' 등을 명분으로 2012년 국회법을 개정한 후에는 원내 1, 2당이 합의하지 못한 법안은 본회의 표결이 사실상 봉쇄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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