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1인 시위2014년 6월 광화문광장에서 소방공무원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전환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사진속 소방공무원 1인 시위와 세월호 시위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됐다.
고진영
2014년 4월 16일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바다와 함께 삶을 달리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안방에서 생생하게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재난을 책임진다는 소방관으로서 그 광경은 더욱 참기 힘들었다. 필자가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으로 있을 때이기도 했다. 당연히 실시간 휴대전화로 소방발전협의회 위원들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하나같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안절부절 발만 동동 굴렀다.
결국 우리는 구조장면을 끝내 보지 못했다. TV는 반복되는 레코드를 틀어 놓은 것처럼 이미 가라앉은 생명과는 관계없이 '난 잘못 없어'란 변명과 책임자 찾기라는 소리만 반복하는 듯했다. 각종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만연했다. 세상은 가라앉은 바닷속 슬픔보다 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얼마가 흘렀을까. 이젠 무력감으로 짓눌릴 만큼 짓눌린 감정이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모두 하고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소방발전협의회 경기도 A위원이 갑자기 메시지로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방화복 입고 1인 시위하자"라고 보내왔다. 모든 위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투어 "하자", "까짓것 하자", "찬성"이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2014년 6월 7일 '안전도 빈부격차? 평등한 소방서비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란 팻말을 들고 광화문에서 소방관 국가직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 참혹한 광경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소방관으로서의 순수한 감정의 발로였다. 그 죽음에 무엇으로든 답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1인 시위 문구 역시 충북의 B위원이 집에서 아내랑 밤새워 만들었다. '소방청 독립'으로 할 것인지 '소방국가직'으로 할 것인지만 정해졌을 뿐 자세한 내용은 B위원이 알아서 만들었다.
세월호와 소방관 국가직,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