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삼성중공업 참사로 형 잃은 노동자, '아직도 고통'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 중 한 피해자의 증언 "위험의 외주화 끊자"

등록 2019.04.29 21:53수정 2019.04.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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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크레인 충돌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 조선소 노동자>를 펴내고, 4월 29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 윤성효

 
"오늘 이곳에 오는 차 안에서 많이 울었다. 앞으로는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2017년 5월 1일 세계노동절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참사로 형을 잃고 자신도 고통을 겪고 있는 한 노동자 ㄱ씨가 한 말이다. 그는 29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열린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에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ㄱ씨는 당시 참사 때 친형을 잃었고, 자신도 같은 현장에서 일하다 피해를 입어 지금은 산업재해 신청해 진행 중에 있다. 책 <나, 조선소 노동자>에는 참사 피해자 9명의 구술이 담겨 있는데, ㄱ씨는 이 책의 구술에 참여하진 않았다.

그는 "오늘 이런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줘 고맙다, 고민을 많이 했다"라며 "그해 5월 1일 같이 있었던 형을 잃었다, 2년이 지났지만 매일 생각이 난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힘들어서 수면제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가 났고, 인재였다"라며 "사고가 나고 한 달 간 장례식장에 있었다, 하늘나라에 간 형한테 '다음 생에는...'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ㄱ씨는 "저는 지금 산재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다,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라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데 그분들이 하루 빨리 완쾌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2년 전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로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쳤으며, 수백명이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 가운데 지금까지 11명이 산재 승인을 받았을 뿐이다.

"위험의 외주화,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북콘서트는 김종하 위원(산추련)의 사회로 진행됐다. 김 위원은 "저는 이런 고통을 당하면 분노하고 화를 내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들은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잘 못한다" "조선소는 하청에 하청, 또 하청의 구조가 문제다" "위험의 외주화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증언자의 구술을 듣고 기록했던 인권기록활동가 유해정씨는 "세월호, 형제복지원 피해자 등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냈거나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고통을 듣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라며 "고통이 내 집 문을 넘어 내 방까지 들어와 내 것이 된다면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것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통은 내몫이 될 수 없으니까 아무리 고통을 이야기 해도 가슴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라며 "그러나 당사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함께 성찰하고 반성하는 게 존엄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고통의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중요하다, 고통의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했다' '수고했다' '니가 아프구나'면서 같이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증언 기록에 참여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최지명씨는 "사회에서 누군가와 관계에서 힘들거나 상황이 어려운 조건에서 피해자로 남겨놓지 않고, 그 대상에 대해 목소리를 내거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떠한 대처를 하는 게, 그리고 그 과정에 동행하는 게 상담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함께 들어주면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라며 "트라우마 고통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갖도록 해주는 게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어려움이 생겨도 같이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해정씨는 책에서 증언했던 이정은(가명)씨 이야기를 꺼냈다. 이씨는 서울에서 옷장사를 하다 그만두고 거제로 와서 삼성중공업에서 용접 일을 하다 참사를 당했다. 이씨는 선배들이 용접을 '예술처럼 했다'고 했다.

유씨는 "이정은씨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현장 노동자라도 자기 일에 대한 엄청난 긍지를 갖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라며 "노동 현장을 흔히 막장에서 돈을 버는 재미로만 사는 줄 알았는데, 그분은 도장 일을 하면서 무엇인가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한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술회했다.

이어 "많은 사업주들은 노동자를 일회용으로 생각하고, 사고가 나면 치워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라며 "이정은씨가 다시 한번 거제에서 노동하면서 용접으로 예술의 경지에 오르고 은퇴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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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크레인 충돌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 조선소 노동자>를 펴내고, 4월 29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 윤성효

  
"재경험이라고 하는 반응이 온다"

최지명씨는 참사 증언을 했던 김오성(가명)씨 이야기를 했다. 최씨는 "김오성씨는 배를 다 만들고 난 뒤에 도크에서 나갈 때 '저 배는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가장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왔지만 몸이 위협을 기억하고, 현재가 마치 그 장소인 것처럼 무섭고 두려우며, 그 현장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재경험이라고 하는 반응이 온다"라고 말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갇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우연한 것이지만 힘들어 한다, 그래서 20층 높이인데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기도 하고, 크레인 참사가 난 현장을 지나가면 3분이면 될 거리인데 둘러서 가기도 하며, 화재 난 걸 본 사람은 붉은색이 있는 곳을 피하게 된다"라며 "이것을 흔히 '회피 반응'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 가족들도 힘들다, 견디기 힘들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다, 길거리 가다가 경적 소리를 들어도 화를 내고,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아이한테 해코지를 했다가 후회하기도 하며, 아내와 다툼을 자주 한다"라고 덧붙였다.

대책도 내놨다. 그는 "우리나라 상담사들도 트라우마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다"라며 "사회적 트라우마는 힘든 일을 잊고 싶어하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태에서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중요하다, 트라우마는 '망각의 해법'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고 '기억의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최씨는 "사회적 트라우마는 사회적 연결, 사회적 지지와 관심 속에 훨씬 더 치료 효과가 크다"라고 강조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요하다는 것. 유해정씨는 "트라우마는 개인이 잘못해서 오는 고통이 아니고 사건 처리를 잘못해서 오는 사례가 많다"라며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명백히 돼야 하고, 사건의 책임자가 분명하게 처벌돼야 한다,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돼야 하고, 합당한 보상도 이뤄져야 하며, 재발하지 않도록 기록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지명씨도 "비록 사고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즉시 그런 것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하고, 사회적 시스템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우귀화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삼성중공업 참사 이후 취재를 하면서 피해자를 만나보니, 1년이 지났어도 고통 속에 울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힘들어 했다"라며 "우리 사회가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마틴링게 프로젝트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에 참여했던 김태형 변호사는 "위험의 외주화는 일터를 전쟁터로 만드는 것 같다, 작업장에서 운이 좋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거나 다친다"라며 "위험이 큰 작업에 대해 원청은 책임을 지지 않고 하도급에 미룬다, 이젠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책 <나, 조선소 노동자>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의 사회연대기금 지원으로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기획해 발간하게 됐다.

홍지욱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책을 읽으면서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은 실제 현장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다룬 기록이다"라며 "삼성중공업 참사 이후 대책뿐만 아니라 수습과 구호 등 모두 엉망이었다, 500여 명이 그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처참한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으로 사회적 관심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북콘서트에서는 노래패 '좋은세상'과 우창수 부부가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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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크레인 충돌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 조선소 노동자>를 펴내고, 4월 29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 윤성효

#삼성중공업 #나, 조선소 노동자 #산재추방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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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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