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문덕호 주핀란드대사.
연합뉴스
문덕호 주핀란드대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5월 말이었다. 당시 나는 임시조직으로 이제 태동 중이었던 북핵외교기획단 북핵2과로 가게 됐다. 문 대사는 당시 북핵1과 과장이었다.
첫 인상은 '촌 사람'이었다. 다소 나온 아저씨형 뱃살에 목이 짧고 어깨가 좁았다. 입도 툭 튀어 나온 분이 뭔가 아재 개그를 한 마디 던지고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껄껄 웃어대곤 했다.
당시 북핵외교기획단은 바빴다. 뭐든 처음이었다. 6자회담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고, 부딪쳐야 하는 과제 하나하나가 뭐 어디서 전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막막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의 운명' 마주한 외교관
그러나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다. 이리 찔러 보고 저리 찔러 봤다. 회담이 잡히면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시나리오를 짜보며 궁리를 거듭했다. 회담이 끝나면 또 다음 수순을 위해 관련 국가들과의 협의 계획을 짜고 실행해야 했다. 밤을 새기 일쑤였다. 때로는 격론이 오가기도 했다.
그런 판국 속에 문덕호 대사는 주무과 과장이었다.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사가 힘들고 어렵다는 티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때 여러모로 마음 고생이 많았다는 것은 모두 후일에 다른 이들에게 들어서 알았다.
문 대사는 힘들어 하는 후배들에게도 시원하고 진솔하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내가 속한 과의 과장이 아니었지만 그런 문 대사가 좋았다. 종종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하루는 한밤중에 과에 남아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데, 지나가다 나를 본 문 대사가 한 마디 했다.
"한잔 해?"
지금은 다 재건축이 돼버리고 없지만 당시 외교부 근처에는 허름한 주점이나 조그만 맥줏집들이 꽤 있었다. 내려갈 때 밟는 나무 계단 하나하나가 그리도 삐그덕거리던 어느 테이블 4개짜리 지하 주점에서 문 대사, 나 그리고 다른 후배 한 명이서 병맥주에 땅콩과 오징어를 씹으며 뭔 얘기를 그리도 했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시애틀로 가서도 '북핵'에 매달렸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