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28.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을 하는 모습
퀴어여성네트워크
이후 여러 여건상 예정된 날짜에 체육대회를 하기는 어렵다 판단하여 긴급구제를 일반 진정사건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받게 된 진정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체육관 측은 전화통화에서도, 면담에서도 모두 불가피하게 공사일정이 겹쳤다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언제 적힌지도 모를 담당자의 메모 1장뿐이었다. 이렇게 얄팍한 자료를 갖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한편, 씁쓸한 마음도 느낀다.
만일 퀴여네가 녹음을 하지 않고 정보공개청구도 거부당해 제출할 자료가 없었다면, 그 반면 체육관 측이 뭔가 그럴듯한 자료를 갖추었다면 과연 이러한 명백한 차별이 밝혀질 수 있었을까. 가해자가 아닌 차별을 당한 피해자가 부지런해야 하는 현실은, 차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여러 개선들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보여준다.
노골적 차별에 맞서 체육대회를 해야 하는 이유
한편으로 결정문을 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도 있다. 퀴여네와 체육관 대관담당자가 면담을 했을 당시 담당자는 21일에 잡힌 모든 대관이 취소되었고 연말까지 일정이 잡혀 있어 시간 조정은 불가능하다 하였다.
그러나 결정문에서 드러나듯 21일 오전에 대관을 하였던 어린이집 행사는 일정을 조정해 11월 25일에 진행이 되었다. 심지어 동대문구 체육관에서 이렇게 대관을 취소하고 일정조정이 되지 않은 사례는 퀴여네만이 유일하다는 이야기도 조사 과정에서 들었다. 분노를 넘어 실소가 나오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되었던 동대문구 체육관 담당자들에게 대체 '성소수자'는 어떤 존재일까. 아무런 근거 없는 혐오가 담긴 민원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대관을 취소해도 되고, 그럼에도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을 그런 무력한 존재? 모를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성소수자를 쉽게 차별해도, 쉽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동대문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소수자 행사에 대한 대관취소, 거부는 서울 서대문구, 대구시, 부산시, 제주시 등 곳곳에서 벌어졌고 벌어지는 일이다. 이에 맞서는 방법은 결국 더 많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퀴여네가 여성성소수자를 위한 체육대회를 하고 차별에 맞서 궐기대회를 하고, 나아가 성소수자들이 축제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유일 것이다.
2018, 2019 퀴어여성게임즈, 게임이 끝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진정 제기 후 결정을 받기까지의 1년 7개월, 퀴여네는 바쁘게 움직였다. 한 차례 연기된 체육대회 개최를 위해 2018년 초부터 다시 기획단을 구성하여 평창올림픽 개막식장, 여성마라톤 행사장에서 모두를 위한 스포츠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17일. 은평구민 체육센터에서 마침내 '2018 퀴어여성게임즈'가 개최되었다.
한 차례의 연기를 거치며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담아 이루어진 행사는 선수와 관중 포함 약 300명이 참가하며 여러 스포츠의 명장면들을
만들어냈다(관련기사 : 궐기대회까지 한 체육대회,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졌다http://omn.kr/rqj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