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연해주 독립선언 기념식에서 마을 행진을 하는 고려인 청소년들
고려인지원센터 고려인너머
고려인들이 어릴 적 가족에게 묻는 말이 있다.
"우리 한국인이라면서 왜 러시아에 살아요?"
대답을 들은 후 바로 '한국은 어떤 나라예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 가면 다 우리처럼 생겼다'고 부모님에게 자주 들었어요." (제냐, 17살)
한국에 온 고려인 청소년 중에는 몇 년간 부모 중 한 명과 떨어져 지낸 경험이 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한국으로 일하러 간 것이다. 부모가 먼저 한국으로 가서 몇 년간 일하다가 이곳이 자녀를 키우기에 적합하다고 판단이 들 때 가족 단위로 이주한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7년 일한 후 저를 데리러 왔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미래 세계에 온 것처럼 깜짝 놀랐어요." (티마, 19살)
기뻤던 마음과 달리 한국은 러시아와 달랐다. 우선 언어가 다른 나라였다. 학교에 갔지만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다문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한글 교육을 지원받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또래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친구는 사귈 수 있었을까?
다들 "잘 지냈다"고 답한다. "애들이 친절했다" "보디랭귀지를 사용했다"고 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는 순간 아이들이 "반 친구들과는 학교에서만 논다"는 말을 꺼냈다.
학교 밖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또래들은 수업이 끝나고 학원에 가는데 고려인 아이들은 그곳에 속하지 못해서일까.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만나지 않는 이유를 말했다. 종합해보니 '반 친구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무엇이 다를까.
다름을 느끼다
정체성을 묻자 18살 니키가 엉뚱한 답변을 한다.
"저는 저를 호모사피엔스라 생각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저는 사람을 민족으로 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사람은 그냥 사람인데 왜 국적이나 인종으로 따지나요?"
니키는 한국 사람들이 보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 외국인.'
니키는 자신이 받는 외국인 취급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사람을 민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까닭이 여기 있는 듯 보였다.
한국은 인종, 민족, 국적(나라) 개념이 구분되지 않은 사회이다. 그래서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받아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에게 근접한 민족(인종)적 타자는 도심에서 보는 관광객과 영미권 영어 강사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방송에 나오는 '대한외국인' 정도다.
대다수 이주민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분류된 채 눈길 닿지 않는 곳에 머문다. 몇 년 일하다 제 나라로 떠날 존재로 인식된다.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니 고민도 없다. 고민의 부재는 고려인이라는 복합적인 역사를 지닌 존재 앞에서도 드러난다.
고려인들이 눈앞에 나타나면 우리는 편리하게 '한민족'과 '외국인'이라는 개념을 공존시킨다. 사실 그 말이 지닌 의미는 '너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니키는 요즘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연설에 '꽂혔다'고 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알려진 연설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설보다는 마틴 루서 킹이 가진 소수자성에 끌린 모양이다.
"마틴 루서 킹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미국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어요. 그 점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민족은 같은데, 같은 민족임을 보장받지 못하잖아요."
니키는 "이것도 인권 문제잖아요?"라며 되묻는다. 인정은커녕 심지어 편견의 대상이 된다. 차별이 아니어도 이들은 정체성만으로 매우 혼란스럽다.
특성화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제냐는 자기 정체성을 '궁금하다'고 했다.
"저도 궁금해요. 한국인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러시아인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제냐는 자신 안에 교차하는 이질적인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답 구할 곳조차 찾지 못한 듯 보였다. 인종과 민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넘어 정체성을 고민하고 발견하여 내재할 기회를 누릴 권리 또한 인권이다. 그러나 그 기회를 누리는 고려인 청소년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처럼' 생긴 사람들의 나라
그래도 제냐는 한국에 가면 전부 '우리처럼' 생긴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런데 '우리처럼' 생기지 않은 고려인 4세들도 있다. 티마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다. 하얀 피부와 짙은 눈, 티마의 얼굴에는 서양권 외모의 특징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티마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은 남달랐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외국인이라고 여기고 영어로 소통하려고 해요. 국적을 말하면 깜짝 놀라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왜 한국 국적이냐'고 물어요. 그러면 귀화했다고 해요."
티마는 잘 모르거나 대화를 하기 싫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서양인이라고 했을 때와 달리 고려인임을 말하는 순간 질문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왜 얼굴이 다르냐' '왜 한국말을 못 하냐' 등 무례한 질문도 온다.
서양인이 한국 국적으로 귀화를 하면 '기특'한 일이다. 그러나 조선족이나 고려인 동포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인에게 이들은 한국인 (저임금)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일 뿐이다.
한국은 '같은 외모'를 통해 민족적 동질감을 얻는 방식에 익숙한 사회다. 고려인 4세처럼 얼굴 생김새마저 다르다면 어떨까? '같음'을 벗어난 이들은 한층 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유한과 한국의 차이
"친한 친구들은 제가 고려인인 걸 알아요."
티마는 그랬다. 다른 청소년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친한 친구 서너 명은 '고려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했다. 물론 '고려인'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안다. 역사 수업 시간에 '재외 동포'라며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인을 아는 것'과 '고려인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친구들은 고려인인 자신을 모른다.
한자 수업 때문에 한때 고려인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한국 이름을 짓는 일이 유행이었다. 한국식 이름은 보통 한자의 음과 뜻을 담고 있어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제냐의 한국 이름을 물었다.
"유한이요."
있을 '유(有)'에 나라 이름 '한(韓)'. 자신이 지었다고 한다. 듣는 마음이 좀 애달파진다.
다른 이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장군'이라 한다. 성이 장씨라서 선생님이 '장군이라 부른다'고 했다. 티마는 이름이 '한국'이라 했다. 이것도 교사가 지어준 이름이다. 재미있는 선생님이라고 티마는 웃었다만 나는 궁금했다. "그 이름으로 불리길 원해요?"
"저는 원래 제 이름을 사용하고 싶어요."
티마는 '한국'이 아닌 '티마'로 불리길 원했다. 제냐가 자신에게 붙인 '유한'이라는 이름과 타인이 지어준 '한국'이라는 이름은 의미가 다르다. 이 차이를 한국 사회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제냐가 유한이라는 이름을 짓는 일, 다른 이름을 찾는 일, 제냐라는 이름으로 돌아가는 일 등 이 모든 길목에 자리 잡은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이다. 자신의 이름을 찾아 치열하게 헤매는 이들에게 우리는 '한국'이란 손쉬운 이름을 붙이는 법밖에 모른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미래를 묻자 아이들은 통역사, 외교관 등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연하게도 직업들이 다 국외로 나가는 일이다. 제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승무원이 되기를 원했다. '왜 그 꿈을 가졌냐'고 물으니 제냐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을 때 멋있어 보였어요"라고 답했다.
어릴 적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외교관이 꿈인 니키는 "다른 나라 문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문화를 알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 문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 외교관이 되고 싶어요."
왠지 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니키는 고려인이라는 자신의 존재와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는 학교에서 자신과는 어딘가 다른 또래와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7년을 지냈다. 니키는 이해받고 싶어서 남을 이해하려 하는 걸까. '이해받지 못하기에 한국이라는 나라 밖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