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뚝 끊은 강제동원 피해자 "너무 부아가 치밀어서"

[스팟인터뷰]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평생 사과 한번 못 받고 죽을 것 같아"

등록 2019.08.02 18:17수정 2019.08.0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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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에 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일제 강제징용 근로정신대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2018년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아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 남소연

 
"그것들이 사람이여?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를 판인디 사과 한 번 안했음서. 73년 동안 한 번도 안 했음서 뭐를 해? 내 너무 부에(부아)가 치밀어서 손발이 달달 떨리오. 일본, 그 말 내 입에 담기도 싫소."

뚜뚜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91) 할머니는 2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하던 도중 돌연 전화를 끊어 버렸다. 기자가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수출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는 말을 한 직후였다.
  
"내가 기자님헌티 화 내려던 게 아닌데... 이게 막 가슴이 턱턱. 하이고 울화통이 터져서 그랬어. 국민들이라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이제 사는 게 얼마 안 남았는데 평생 사과라는 것을 받아볼 수나 있겠느냐고..."

다시 통화가 닿았다. 양 할머니는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지만 분노는 여전했다. 수화기 너머로 가슴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양 할머니는 "국민(초등)학교 6학년 (1944년) 때 교장이 '일본에 가면 돈도 많이 벌고 학교도 갈 수 있다'고 한 말에 속아 미쓰비시 항공제작소로 갔다"며 "그때 고생하고 온 일을 생각하면 일본의 일자도 말하기 싫다. 정말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그날 일은 더 말하기도 싫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 나왔을 때는 아주 혹시나 생전에 사과 받을 수 있는 건가 기대혔어. 그런디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끝을 흐리던 양 할머니는 "일본은 70년 동안 발뺌하고서는 또 우리를 농락하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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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승소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 환호하는 이금주 광주유족회 회장과 양금덕 할머니 ⓒ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끝인 줄 알았던 대법원 판결 "또 다시 농락당했다"


"(대법원 판결 나왔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제. 이제는 사과 받을 줄 알았어. 70년 넘도록 (일본이) 사과 한 번 안 했으니께. 그 전에는 대통령이고 나라고 우리 편 들어준 곳 하나 없었는데 이제는 뭐가 바뀌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지금 봐. 무슨 보복이여, 악질이 따로 없어. 우리(피해자들)는 일본을 악질이라 하지 사람으로 인정 안혀."

지난해 11월 29일 대법원이 양 할머니를 비롯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가 양금덕 할머니 등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총 5억6208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


그러나 판결 이후 일본 정부의 대응이 거세졌다. 지난 7월 4일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각의 결정 한 것.

양 할머니는 "안 그래도 일본이 경제 보복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더 나선다는 거냐"며 "어떻게 잘못한 놈들이 더 성을 낸다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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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재판 1심 판결에서 근로정신대 사건이 기각되자 판결에 비통해 하는 아사히신문 보도 속의 양금덕 할머니 모습. ⓒ 이국언


"나가 73년 동안 어떤 수모를 겪고 살았는디... 지금까지 눈물로 세월을 지낸 산 증인이 여기 있는데 어떻게 그러냔 말이여. 나가 일본에서 그런 일을 당한 후에 한국에서도 손가락질 받는 삶을 살았어. 아직도 우리(피해자들) 얘기 잘 모르는 사람은 나보고 위안부 할매라고 혀. 내 자식들이 길 가면 위안부 새끼 간다고 하고. 그나마 이제사 많이 알아줘서 다행이지만 계속 그런 세상을 살아 왔어.

그래서 일본이 사죄를 한다 해도 양심으로 사죄하지 않으면 받아줄 생각도 없어. 말로만은 안 돼. 그게 진심일지 아닐지 워찌 알겠어. 아베 지가 무릎 꿇고 눈물로 하소연을 해야지 우리가 사죄한다고 인정을 하지."


'사과'라는 단어를 재차 강조한 양 할머니는 "그런데 올해도, 내년도 아베 시대라는 거 아녀"라며 "다른 사람이 총리가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베가 남아 있는 이상 사과는 턱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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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 연합뉴스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연이어 목소리를 높이던 양 할머니는 통화 끝무렵에 한 가지 당부 말을 전했다.

"그래서 일본이 계속 경제 규제한다는 거잖여. 하면 지들만 하나? 우리도 할 수 있지. 우리도 지들 물건  안 사고, 일본 안 가고. 지금도 일본 상품 불매운동 하고 있잖여. 지들이(일본이) 한국을 얼마나 무시하는 거여. 애당초 그렇게 일본 거를(제품을) 사지 말아야 혔어.

그래도 이렇게 시민들이 같이 일본이랑 싸워주시니까 너무 고마워. 우리는 (일본한테) 사죄 한 번 못 받고 죽을지 몰라. 지금도 73년 넘도록 사죄 한 번 못 받고 있어. 시민들은 일본 놈들이 양심을 죽인 아주 못된 짓거리 한 놈들이라는 거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화이트리스트 #경제보복 #일본 #아베 #강제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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