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수 한국교직원공제회이사장.
한국교직원공제회
"투자를 결정할 땐 관련부서 직원들 전원이 직급 상관없이 모두 참여하고 있어요. (투자 대상이) 일정 점수가 안되면, 이사장이나 대통령이 나서 (투자를) 지시해도 할 수가 없어요."
그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차성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의 말이다. 차 이사장은 유독 '민주적', '수평적' 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기자가 다른 연기금에 비해 교직원공제회의 투자 운용 실적이 좋은 이유를 물었을 때였다. 차 이사장은 "어떤 외압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직원공제회는 금융시장 등에선 조용한 '큰 손'으로 통한다. 올해 4월말 기준으로 자산만 36조 1081억원에 달한다. 회원수도 81만명에 이른다. 회원 대다수는 국내 초중고 교사와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사학연금의 경우 교사 등이 강제로 가입되는 반면, 공제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1971년에 교직원 7만명이 자산 12억원으로 시작했다. 50여년만에 회원수는 10배이상, 자산규모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했다.
특히 최근 5년동안 교직원공제회가 투자로 올린 수익률은 평균 5.9%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의 침체속에 대부분 연기금 투자 실적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저조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적표다. 공제회는 이미 국내외 금융시장 뿐 아니라 에너지 등 환경친화적인 인프라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교직원공제회 빌딩에서 차 이사장과 마주 앉았다. 차 이사장은 지난 참여정부때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냈고, 서울 금천구청장을 오래동안 지내면서 현장에 밝은 행정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81만 회원 조직을 이끌고 있다. 여름 휴가도 잊은 듯 그의 일정표는 빼곡했다.
시장의 조용한 '큰손' 교직원공제회... 36조원 고수익 운용 비결
- 두달 후면 이사장으로 일하신지 1년이 돼 간다고 들었는데요.
"점점 더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처음에 들어와서 이런 저런 개혁안을 들고왔는데...(웃으면서) 우리 직원과 회원들의 요구를 잘 받아서 하나씩 정립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공제회 (자산 등) 규모가 커지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어느때보다 사회적 책임도 크게 느끼고 있어요."
- 사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교직원공제회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한 분들도 있습니다. 2021년이면 50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예전의 '계(契)' 나 '두레'와 같은 공동체 문화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전국의 초중등학교 선생님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직원이 되시면 대체로 공제회에도 가입하시고, 전체 교직원의 88% 정도가 회원이에요.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회원들이 매달 낸 돈을 잘 관리해서, 그분들이 퇴직할때 잘 돌려드리는 것이에요."
- 자료를 보니까, 자산규모가 엄청나더군요.
"(지난 4월말 기준으로) 36조원이 넘어섰으니까요. 회원이 80만명이 넘는데, 이들을 위한 금융기관으로서, 무엇보다 재정건전성이 중요하잖아요. 작년에 대부분 연기금 등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어요. 대신 우리는 작년에도 4.5% 성장을 했죠."
차 이사장은 "전체적으로 국내외 경제상황이 어려워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않고, 수익도 올리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교직원공제회는 국내외 금융시장 이외 각종 친환경 인프라 사업 등 대체 투자에도 꾸준히 비중을 늘려왔다. 그는 "작년에 대체 투자 부문에서 11.0% 실적을 올렸다"고 소개했다.
- 다양한 부문의 투자를 늘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따로 있는지.
"그것이 조직문화와 연결이 돼 있다고 봐요. 특히 돈을 움직이는, 기금운용에 대해선 철저하게 민주적으로 하는 겁니다."
- 민주적으로요?
"(고개를 끄덕이며) 좀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 좋은 투자처를 찾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투자 결정을 제대로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죠. (투자 결정을) 이사장이나 팀장이 지시해서 하는 것이 아녜요. 투자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은 직급과 상관없이 함께 결정하는데요, 이같은 수평적 의사결정이 기금 운용의 안정과 효율성을 가져왔다고 보는 거죠."
- 사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연금의 경우 여러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당시 보건복지부장관과 공단 이사장 등이 사법처리를 받기도 했는데요.
"직장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죠. 사실 민주주의라는 것이 1987년 이후 제도로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상호 신뢰의 문화로 자리잡기까지는 30년 넘는 세월이 걸렸어요. 경제민주화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이나 공장에서의 민주주의는 부족하죠. 오죽했으면 법으로 규제를 하겠습니까."
조직문화와 혁신 그리고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