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6일, 시민단체들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규탄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5개월 후, 국방부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청원에 답변했다. 청와대가 청원을 국방부로 이관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공식 답변 기한인 90일을 훌쩍 넘긴 이후였다.
"진상조사를 실시해야 하나, 국방부에 보유하고 있는 자료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음. 따라서 이 문제는 한국과 베트남이 공동으로 조사해야 하나, 공동조사 여건이 아직 조성되지 않고 있음."
해당 답변이 나온 이후 한베평화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연꽃아래 등 60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미 수십 년 간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군사 작전 기록과 민간인 학살 증언을 교차 검증하지 않는 공식 입장을 비판했다.
또한 중앙정보부가 전쟁 당시 퐁니, 퐁넛 학살에 대해 참전군인들을 조사했음에도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함께 나왔다. 이들은 국방부의 답변은 사실상 진상규명의 의지가 없음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거는 있었다
진상조사가 불가하다는 내용을 담은 국방부의 답변은 우리 사회가 아직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베트남 전쟁 시기의 학살 문제에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장들이 존재한다. 아예 민간인을 죽인 적 없다는 주장부터, 전쟁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 것뿐이라는 주장, 학살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학살 문제의 증거는 이미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학살은 퐁니, 퐁넛 마을의 학살이었다. 가장 증거자료가 많으며, 역사적인 사실이 뒤얽혀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퐁니, 퐁넛 학살이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베트남 인민군대 신문의 1968년 4월 17일 기사에서였다. 해당 기사에는 "미국과 박정희 용병 무리 적들의 야만스러운 새로운 죄악-그들은 꽝응아이와 꽝남에서 1200명 이상의 우리 동포들을 살해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퐁니 마을과 퐁넛 마을의 학살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