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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불명 복면 사나이들의 수상한 행적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46회] 갑자기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이 복면을 하고, 집회에서는 강경론을 폈다

등록 2019.11.08 15:53수정 2019.11.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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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청에 모인 시민들
도청에 모인 시민들5.18기념재단
광주민주화운동 7일째인 5월 24일, '해방연력'으로는 3일째의 날이다.

아침부터 불길한 뉴스가 전해졌다. 계엄사는 아침 8시 KBS라디오를 통해 "24일 정오까지 광주시는 광주국군통합병원에, 기타 지역은 각 경찰서에 무기를 반납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최후통첩과 같은 방송을 내보냈다.

무기반납 또는 총기회수 문제는 계엄군이 시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도청수습위원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된 이슈였다.

다수의 시민들이 총기를 갖게 됨으로써 발생할 지 모르는 불상사를 막고, 계엄군의 재진입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론과, 여전히 시외곽에서 공수대의 시민살상이 자행되고 있는 터에 비무장 상태에서 계엄군이 재진입하면 속수무책이라는 현실론이 갈리게 되었다. 무장한 괴한들로부터 금품과 현금을 빼앗겼다는 신고가 지휘본부에 들어왔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5.18기념재단
 
학생수습위원과 시민수습위원들은 합동으로 아침 일찍부터 7개 전초기지를 포함한 시 외곽지역으로 돌며 빵과 우유, 음료수 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을 공급해 준 다음 무기반납을 종용하고 다녔다.

특히 시민수습위원인 조비오 신부는 무장 시민군에게 "무기를 일단 반납한 다음 사태 수습에 임하자"고 간곡히 설득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조 신부의 이같은 무기 회수 설득 노력은 26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일부 시민군은 "왜 우리가 총을 반납해야 하느냐"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며 무기 반납을 완강히 거부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부분 복면을 하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무기회수에 나선 특공대는 무기반납을 놓고 이같은 강경한 반발에 부딪치자 주춤거리게 되었다. (주석 1)

23일 경부터 시내의 집회나 도청 주위에 수상한 사람들이 횡행거렸다. 복면의 사나이들이다. 시민들은 아직까지 각종 시위나 집회에 복면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이 복면을 하고, 집회에서는 강경론을 폈다. 이들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신군부 측이 투입한 프락치였을 것이다.


복면을 한 강경파들은 이렇다 할 수습안을 내놓지도 않았다. 무조건 반대였다. 그리고 무작정 싸우겠다는 것이다.
  
 시민들과 대치중인 진압군
시민들과 대치중인 진압군5.18기념재단
 
또한 당국에 대해서나 어떤 상황을 맞이할 때는 덮어놓고 욕설과 비난부터 퍼붓고 나왔었다. 여기에서 필자가 보았던 이들 복면부대의 행동을 간추려 보면 대개 이러했다.

첫째는 강경했었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무조건 반대하고 싸우는 것이었다.


둘째는 도청을 빙빙 돌며 활동하는 듯했다. 주로 차량을 타고 금남로를 왔다갔다하고 도청을 드나들고 도청상황실이나 본부 보초도 자청하고 나서는 듯했다. 

셋째는 위험지대는 피하는 것 같았다. 가령 7개 전초기지나 계엄군이 지키며 발포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었다.

넷째는 무기반납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다섯째는 26일밤 이후는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27일의 수습작전을 예고했음인지는 모르지만 26일 석양부터는 복면한 사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주석 2)


이날 오후 3시경 제2차 민주수호 시민궐기대회가 도청광장과 금남로에서 1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날도 시외곽에서는 그리고 일부 시군지역에선 계엄군과 시위대 사이에 산발적인 교전이 이루어졌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5.18기념재단
 
대회가 진행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음에도 자리를 뜬 시민은 거의 없었다. 이날 대회에서는 녹두서점에서 제작한 전두환 화형식이 거행되었다. 도청수습위원회는 계엄사분소를 방문하여 나눈 8개항을 보고하였다. 8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계엄군의 시가진입을 일절 금지하라.
답 : 시민측이 먼저 발포하지 않는 한 진입이나 사전발포하지 않겠다. 또한 지금 시내엔 1명의 계엄군도 없다.

2. 5ㆍ18 공수부대의 지나친 진압을 인정하라.
답 : 현장 설명을 듣고 과잉진압임을 인정한다.

3. 연행자를 석방하라.
답 : 연행자 927명 중 79명을 제외하고 모두 석방했으며 수습대책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추가로 34명도 80년 5월 23일자로(어제 오후) 석방했다.

4. 사망, 부상자의 보상 및 치료는?
답 : 보상은 물론 대책을 세우고 있다.

5. 방송재개 및 사실보도 촉구.
답 : 지역방송이 속히 회복되는 대로 사실보도하도록 힘쓰겠다.

6. 자극적인 어휘 사용 금지(예 : 폭도).
답 : 순수한 시민을 폭도라 함이 아니요, 악용하는 자를 말하며 상부에 부드러운 어휘를 사용토록 진정했다.

7. 시외통행로에 통로를 주라.
답 : 민간인은 출입할 수 있으되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면 보호해 주며, 단 자동차나 무기휴대차는 접근할 수 없다.

8. 사태수습 후 처벌금지
답 : 사태수습 후 절대 보복하지 않겠다(군 지휘관과 대책위원회의 명예를 걸고 약속함). (주석 3)


주석
1> 김영택, 앞의 책, 153쪽.
2> 앞의책, 156쪽.
3> 『광주5월항쟁전집』, 10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5ㆍ18광주혈사 #5.18광주민주화운동40주년 #녹두서점 #민주수호시민궐기대회 #광주민중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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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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