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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라이더의 죽음... "일할 땐 '근로자', 사고 나면 '사장님'"

라이더유니온, 진주 10대 배달원 사망 사건 통해 본 노동 현실 고발... 정부 대책 촉구

등록 2019.11.26 18:18수정 2019.11.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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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라이더 유니온’이 지난달 경상남도 진주에서 발생한 10대 배달원 사망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배달원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6일 ‘라이더 유니온’이 지난달 경상남도 진주에서 발생한 10대 배달원 사망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배달원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라이더 유니온 제공
 
'80600원'

지난달 배달 중 사망한 열아홉 살 배달원이 남긴 '유산'이다. 그는 이 돈을 벌기 위해 '저녁 5시에 출근해 새벽 5시까지' 일했다.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번 돈이기도 하다. 배달대행업체에 "직권 한 개만 빼주세요. 급해서 사고 날 것 같네요"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직권'은 배달대행업체가 배달원에게 배달 업무를 할당하는 것을 뜻하는 현장 용어다. 이런대도 속사정을 모르고 사람들은 그를 '배달원이 함부로 운전하고 신호 위반한다'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는 배달대행업체에 '묶인 몸'이었다. 뭐든지 허락을 받아야 했다. 식사 때면 '단톡방'에 '저 밥 좀 먹고 오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고 '교대로 드세요'란 대답을 듣고서야 끼니를 때웠다. 배달 중 화장실을 갈 때도 그랬다. '빠르게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라고 단톡방에 남긴 후에야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배달대행업체는 퇴근 시간도 '지휘'했다. 그에게 '어플 끄지 마세요', '아직 마칠 시간 아니잖아요'라고 했다. 때때로 '솔직히 밥먹고 바로 퇴근하는 건 고칩시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렇게 열아홉 살 그는 한 달에 한 번 쉬면서 일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24일, 그는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왕복 4차선 도로에서 배달 중 가로등을 들이받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는 산업재해 심사 대상이 안 됐다. 배달대행업체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무등록 오토바이로 일을 시켰다. 그가 남긴 '8만 600원'도 사고 유가족 모르게 출금해갔다. 배달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합인 '라이더 유니온'이 밝힌 열아홉 배달원 A(19)씨의 이야기다.
 
 26일 ‘라이더 유니온’이 지난달 경상남도 진주에서 발생한 10대 배달원 사망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배달원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6일 ‘라이더 유니온’이 지난달 경상남도 진주에서 발생한 10대 배달원 사망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배달원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정대희
 
26일 '라이더 유니온'이 이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배달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서울 마포구 이동노동자쉼터에서 기자회견에서 "우리(배달 노동자)는 일할 땐 근로자인데, 사고 나면 사장님이라고 불린다"라며 "배달노동자들도 근로자로서 합당한 지원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고 정부에 제도 개선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달 진주에서 배달 중 사망한 10대 배달원은 동네 배달대행업체의 지휘·감독 하에서 출퇴근 시간을 지시받고 화장실 오가는 것까지 보고하며 배달업무를 했다"라며 "이런대도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는 유족을 만나 특수고용자, 즉 개인사업자로 산재 신청을 안내했다"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되면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에 따라 월수입이 145만 원 4000원으로 최저임금보다 낮게 계산된다. 사업주의 책임도 약해져 배달 노동자들이 불리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근로자로서 산업재해 승인을 받으면 실제 월수입의 평균 70%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등 노동관계법의 다양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산업재해 보험에 가입해도 다르지 않았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배민커넥트'와 '쿠팡이츠' 등 클라우드소싱 배달대행업체의 배달원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으나 사고가 나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전속성' 때문이다.


클라우딩 소싱은 '대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urcing)'의 합성어로 일반인들이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 자신의 운송수단을 활용해 원하는 시간에 배달 일을 하는 업종이다.

박 위원장은 "배달원은 퀵서비스 기사로 분류되는데 여러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업체로부터 소득 절반 이상을 얻는 등 전속성의 기준을 충족해야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며 "주된 수입을 얻을 일이 따로 있고, 부업으로 배달원으로 하는 경우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배민커넥트'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구교현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산재 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최근 고용노동부 등에 문의한 결과 사고가 나면, 산재처리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라며 "사업자들은 이런 내용을 모르고,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고,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7년째 배달 노동을 하고 있다는 유상석씨도 "대형 플랫폼이 아니라 각 동네에 있는 군소 배달대행업체에선 산재에 대해 일언반구 않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산재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접하지 못한 채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라고 정부를 규탄했다.

이에 따라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대행 산업 등록제 도입과 플랫폼사·배달대행 업주의 산업재해 보험료 부담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 폐지, 전속성 개념 등 8가지 안을 정부에 요구했다.

박 위원장은 "대도시는 '부릉'과 '바로고', '생각대로' 등 배달대형플랫폼이 배달대행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군소 도시는 배달대행사가 다시 한번 배달대행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라이더를 통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라며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플랫폼 회사의 책임은 빠지고 배달대행업체만 책임 의무를 지게 된다. 단순 신고제가 아닌 등록제를 도입해 업체들도 배달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겸 노무사는 "혁신을 외치며 사업에 뛰어드는 스타트업들이 노동권에 대한 지식과 인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무작정 사업만 확장하고 있다"라며 "산재보험도 외국에선 많은 사람이 가입해서 폭넓게 보장받을 수 있게 문턱을 낮추고 있는 반면,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라고 했다.

진주 10대 배달원 유가족도 입장문을 통해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상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과 봉금 등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라며 "퀵 배달대행업체가 앱을 통해 캐시로 임금을 제공했는데 고용부 근로감독관은 이것이 임금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배달 업체 사업주가 본인의 사업 확장과 이윤을 위해서 배달원의 운전면허 유무, 운전 경력 유무, 나이 등의 상세한 정보를 검토하지 않고, 산재문제도 생각하지 않고 고용해 일을 시키고 있으나 책임을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라며 "배달 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및 배달원에 대한 보호 조치가 그동안 왜 없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제라도 배달 산업 근로자의 근무상황 개선과 배달산업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배달 노동자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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