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2019년12월7일 향년 81세로 운명했다.
진보연대 이원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7일 별세했다.
한국진보연대는 이날 "2019년 12월 7일 오후 10시 57분, 전선과 교사운동에 일생을 바친 오종렬 의장님께서 건강악화로 인해 열사의 곁으로 떠나셨다"라고 밝혔다.
고인의 장례는 8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 빈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진행된다. 이후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고 오후 4시부터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빈소를 옮겨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로 예정돼 있다.
고인은 지난 1938년 11월 28일 전남 광산군(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와 광주사범대 과학교육과, 전남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교원에 임용돼 교단에 섰다. 진도고성중학교, 전남고등학교, 광주동명여자중학교, 전남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 전남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조의 전신) 출범에 참여해 대의원 대회 의장을 지냈고, 1989년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을 역임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전교조 탄압 과정에서 구속돼 1989년 7월 옥중에서 파면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고인은 이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 제1대 광주시의회 의원(무소속)으로 당선됐고, 같은해 11월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공동 의장으로 선출됐다.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고인은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2년 8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1999년에는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내세운 '군자산 정치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2001년 통일연대 상임대표와 전국민중연대의 상임공동대표를 지내면서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범대위 대표를 맡았고 2003년에는 한·칠레FTA저지 범대위 공동위원장, 2005년 APEC반대 국민행동 공동대표, 2006년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한미FTA 저지 활동으로 인해 2007년 7월 세 번째 구속을 당했다. 그해 9월 출소 후 그는 통일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을 통합한 전선운동조직인 한국진보연대를 출범시키고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그의 활동은 계속됐다. 2008년 5월 '미국산소고기 수입반대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촛불집회의 배후로 지목당해 그해 8월 구속됐다. 그의 일생에 네 번째 '옥살이'였다. 2009년 2월 출소한 구는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을 맡으며 민중운동 일선에서 물러서 2015년 전남 담양군에 5.18민족통일학교를 설립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고인은 생전 5.18민족통일학교 설립을 앞둔 시점에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공유하고자 한다"라며 "일본 식민사관에 따른 치욕스럽고 자기 부정적인 역사관을 걷어내고 배타적이지 않은 호혜평등 민족주의를 복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5·18 학교 세우려고 자식 주머니까지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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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운동 지도자'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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