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 원림 뜰에 모란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배남효
12경을 1경부터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옥판봉(월출산 구정봉의 서남쪽 봉우리의 이름),
산다경(원림에 들어가는 동백나무 숲의 작은 길),
백매오(백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는 언덕),
홍옥폭(단풍나무 빛이 비친 폭포의 홍옥같은 물방울),
유상곡수(잔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작은 물길),
창하벽(붉은색의 글자가 있는 푸른빛 절벽),
정유강(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가 있는 언덕),
모란체(모란이 심어져 있는 돌계단의 화단),
취미선방(산허리에 있는 꾸밈없고 고즈넉한 작은 방),
풍단(단풍나무가 심어진 단),
정선대(신선이 머물렀다는 옥판봉이 보이는 정자),
운당원(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 숲).

▲유상곡수 백운동 원림의 5경인 유상곡수를 표시하고 있다.
배남효
12경의 이름을 보면 다양하게 특색을 잘 살려서, 다산의 작명 실력이 아주 탁월하고 돋보인다. 12경을 지적하는 각 곳의 표지판에는 이름과 한시를 적어 놓았다. 제5경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찾아보면 한시가 적혀 있다.
六曲穿牆水 담장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回頭復出墻 고개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偶來三兩客 어쩌다 온 두 세 분 손님이 있어
閒坐共流觴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옛사람들이 풍류를 즐기는 유상곡수연을 노래하고 있다. 유상곡수연은 물길을 만들어 물을 흘리면서 술잔을 띄워 마시며 시를 짓는 잔치놀이다. 중국 동진의 명필 왕희지가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잔을 띄워서 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술잔이 자기 앞에 오면 시를 읊어야 하고 못하면 벌주 3잔을 마셔야 했다. 신라시대의 포석정이 대표적인 유상곡수연을 즐긴 곳이다.
이 집에서도 바깥의 물을 끌여들여 물길을 만들어 손님이 오면 유상곡수연을 즐긴 것이다. 은거를 하면서도 멋있는 풍류는 다 즐기며 살아간 것 같아 부럽게 느껴진다.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은 낡고 초라하지만, 그 당시는 훨씬 자연적인 멋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모란체 백운동 원림의 8경인 모란체를 표시하고 있다.
배남효
제8경 모란체(牡丹砌)에도 시가 적혀 있다.
山人深色譜 산사람 색보에 조예가 깊어
不肯讓時豪 호걸에게 양보하길 즐기질 않지
已貫分株法 그루를 나누는 법 하마 익숙해
仍無採藥勞 작약 캐는 수고로움 아예 없겠네.
집마당의 섬돌 위에 심겨진 모란이 수북하게 자라 품위가 있으면서 꽃이 피어 아름답다. 누가 보더라도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이 집의 모란꽃이 가장 좋아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
시에는 모란을 작약이라 하여 뿌리가 번창하면 떼내어 심으니, 굳이 뿌리채 다 캐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5월을 전후하여 집마당에 모란꽃이 가득 피면 부귀장수의 흥겨움이 다가와 아주 좋다. 그러니 비록 은거를 하더라도 모란꽃을 보면서 살고 싶어 멋있게 심어놓았다.

▲9경 취미선방 백운동 원림의 9경 취미선방을 표시하고 있다.
배남효
또 제9경 취미선방(翠微禪房)에도 한시가 적혀 있다.
一痕墻砌色 담장과 섬돌 빛깔 한 줄 흔적이
點破碧山光 푸르른 산 빛을 점찍어 캔다
尙有三株樹 여태도 세 그루 나무 있으니
曾樓十笏房 예전부터 좁은 집에 살던 것일세
취미선방은 산허리의 선방이란 뜻으로 작고 조용한 방으로 이름붙인 것이다. 선방의 담장과 섬돌이 뒤를 두르고 있는 산과 빛깔이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담장과 섬돌의 빛깔이 점이 되어 산에 비치니, 푸른 빛을 캐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당에는 나무가 세 그루가 오래 자라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선비가 은거하는 작은 집에 나무 세 그루가 심겨져 호젓한 운치를 높여온 것이다. 세 그루의 나무는 12경의 시에 매화와 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나오니 그런 종류였을 것이다.
▲바위에 새긴 백운동 백운동 원림의 집 바깥에 백운동을 새긴 바위가 있다.
배남효
집밖으로 나오면 작은 계곡에 맑은 물이 조금 흐르고 있다. 앞의 큰 바위에 白雲洞이라는 한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금은 날려쓴 글자가 멋을 부렸는데 이담로가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담로가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하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이라고 바위에 새긴 것으로 전해온다는 설명도 붙어 있다.
그러나 경남 합천의 가야산에도 깊은 산골 계곡인 백운동이 있다. 신라말 비운의 인물 최치원이 물러나 여기서 은거하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마도 백운동은 심산유곡에 은거하는 선비들의 이상향 비슷한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강진의 바다 강진의 바다에 가우도가 보인다.
배남효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오래 머무른 유배지라서 그 자취와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그중에서 백운동 원림은 다산이 아름다움에 취해 지내고 싶어 했던 특별한 곳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품위있게 느껴지는 곳이다. 모란꽃 피는 봄날 찾아와 12경을 살펴보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맛보며 다산을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해안으로 나가 시원한 봄바다를 구경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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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도 아름다움에 취한 강진의 백운동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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