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phylaxis 대응 매뉴얼 샘플보조 교사 양성과정에서 각종 응급 상황에 맞춰 대응 매뉴얼을 배운다.
이혜정
아침 9시쯤 들어선 강의실에 강사 게리는 벌써 도착해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더미들(마네킹)과 각종 붕대들, 에피펜 주사기(Anaphylaxis, 특정 알러지 과민 반응 쇼크가 왔을 때 놓는 주사), 벤톨렌 흡입기(Asthma, 천식 환자의 호흡 곤란 시 필요) 등의 도구들이 수북했다.
게리에 따르면, 호주 대부분의 교사들은 응급 처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2-3년마다 갱신을 해야한다. 보건교사가 따로 배치되지 않는 작은 학교들이 많아서 교사나 스태프들은 각각의 응급 상황에 맞는 대응 매뉴얼을 숙지하고 절차에 맞는 처치를 해야 하기에 안전교육에 대한 요구는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방의 주사가 한 학생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
강사 게리가 외치는 주의에 처음 에피펜 주사기를 든 내 손은 덜덜 떨리고, CPR(심폐소생술) 순서는 귀에 딱지가 내려 앉도록 듣고 보고 실습을 해야했다. 간질 환자의 발작 시 대응 매뉴얼, 천식이 있는 아동들을 위한 밴톨렌 처치 매뉴얼, 소아당뇨 환자를 돌보는 법 등 수많은 매뉴얼을 익혀 게리 앞에서 시연을 할 수 있어야 자격증(Emergency first aid response in an education and care setting) 발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게리는 각종 모의 훈련 뒤엔 응급처치 보고서(Illness/Injury Reports)를 작성하는 방법을 교육시켰다. 응급처치를 한 교사는 24시간 안에 자세한 사고의 경위나 실시한 처치를 작성해서 학부모에게 보고하는 게 원칙이었다.
온통 '난생 처음' 배우는 것들 투성이었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교사였던 나의 '무지'가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학교 안전에 대해 한 텀 내내 배운다고?"
교육과정 첫날 수업 계획표(Training Plan)를 받아 든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한 텀 동안 진행 될 클러스터(Cluster)1의 수업은 온통, 학교와 관련된 건강과 안전 그리고 법적으로 요구되는 요건들(Health, Safety, and Legal Requirements in School )뿐이었다.
수업을 듣다 보니 내 예상과는 달리, 수업내용은 단지 응급처치나 학생의 안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보조교사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유지의 중요성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제도, 보조 교사의 책임/의무와 더불어 책임의 한계와 권리도 배웠다.
심지어는 구직 시 영문이력서 작성 요령, 학교와 노동 계약서 작성시 유의사항, 평균적으로 받게 될 임금과 각종 복지 혜택 그리고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호소할 수 있는 기관과 절차들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통틀어 아우르는 과정이었다.
그제서야 호주 생활 3년 넘게 궁금했던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동의 학교 입학과 동시에 아동 주치의의 연락처를 학교에 등록시켜 응급 시에 학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하고, 부모가 가입한 앰뷸런스 보험(호주는 응급차 호송은 유료이므로 대부분 보험을 가입함) 내용을 제공해서 교사들이 응급차 호송 시에 바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