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들어있던 책갈피는 바구니에 따로 모은다. 헌책방 책방지기가 가장 아끼는 수집품.
조경국
책은 보기보다 넉넉한 품을 가졌다.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물건이 들었는지! 책 어느 갈피에 끼워두었다 잊힌 물건들을 책방에 들어온 책을 살피며 발견하곤 한다. 갈피에 들어 있던 '잊힌 물건'을 찾아내는 재미는 헌책방 책방지기의 몇 안 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헌책방까지 들어온 책들은 대부분 폐지 처리되기 전 겨우 목숨을 구한 것이다. 책 속에 들어있던 물건들은 버려진 속에 또 한 번 잊힌 존재다. 흔한 책갈피부터, 편지, 엽서, 영수증, 신문이나 잡지 기사 스크랩, 껌종이, 메모지, 마른 나뭇잎과 꽃… 드물지만 비상금으로 넣어둔 지폐가 나오기도 한다(책방지기로 일하는 지난 6년 동안 딱 한 번 5천 원짜리 구권 지폐를 발견한 적 있다). '잊힌 존재'를 발견하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무슨 사연이 있을까 더듬어본다.
어떤 때는 눌러 말린 꽃으로 만든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 책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오래전에 이미 희미해진 그 꽃 냄새를 맡으며 이것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여기에 끼워놓았을까, 하고 상념에 빠졌다. 세월을 뛰어넘는 만남은 헌책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다.
야기사와 사토시의 소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에 나오는 주인공 다카코의 독백이다. 낡은 책, 다른 이의 인생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을 마주할 때면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묘한 감정이 일곤 한다. 그 감정에 맛이 있다면 쓴맛 깔린 단맛이랄까. 그 맛을 음미하며 책갈피가 떨어져 나온 쪽을 살핀다.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이 책갈피가 있던 쪽 사이에 담겨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은 어디서 왔을까. 이 책을 읽었던, 혹은 가졌던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갈피에 끼워둔 이 물건들은 왜, 무엇때문에 넣어둔 것일까. 이 잊힌 물건들을 다시 기억하고 찾으려할 때가 있을까.
문 닫은 곳이 더 많은, 책갈피 속 서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