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해마다 명절이 되면 불편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학생에게는 성적을, 취업준비생에게는 취업을, 직장인에게는 연봉을, 비혼에게는 결혼을 묻고 또 묻습니다. 출발은 선의의 관심이라 하더라도 사생활을 추궁 당하는 2030세대는 한없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잡코리아가 성인 319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 조사 응답자의 33.3%가 '결혼(자녀) 언제쯤?'을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았습니다. 그 뒤를 '연봉은 얼마나 받느냐'(28.2%), '돈을 얼마나 모았느냐'(20.6%) 등이 이었습니다. 취업준비생 응답자의 45.8%가 '취업은 언제 할 거냐'를, 대학생 응답자의 24.9%가 '앞으로 계획이 뭐냐'를 가장 싫어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에는 '명절대피소'라는 항목이 등장했습니다. "명절에 오지랖 넓게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하는 친척들을 피해 큰집 밖의 다른 곳으로 몸을 옮기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2015년 서울의 한 어학원에서 '친척군단의 귀환'을 부제로 이벤트를 시작한 이후 늘어나는 추세로 알려졌습니다.
2020년 설을 앞두고 <오마이뉴스>는 불편한 질문에 노출된 2030세대를 위해 집단지성의 힘을 빌렸습니다. 이름하여 '명절봇' 프로젝트. 사회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에게 "설 명절, 오랜만에 만난 삼촌과 이모, 혹은 고모로부터 불편한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을 모아 챗봇(Chatbot) 형태의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아쉽게도 많은 분이 프로젝트 동참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저는 60대라 대답을 못 하겠습니다"라는 유시민 작가의 거절 사유나 "아무리 재치 있게 받아쳐도 질문받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말처럼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렇게 곤란한 질문을 젊은 세대에게는 일상적으로 강요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친척들이 사생활을 이런 방식으로 캐물은 적도 없고 캐물을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에 제 상상력으로 좋은 답을 내놓기가 불가능합니다"라고 했고,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도 "외국에서는 신체 관련, 연봉, 직업 등을 묻는 게 거의 금기어 수준으로 실례"라며 완곡한 거절 의사를 표했습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답변
'명절봇'은 페이스북의 '리암봇'을 벤치마킹했습니다. 명절봇을 클릭하면 불편한 명절 단골 질문 가운데 하나가 무작위로 등장하고 집단지성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질문과 답변이 계속 바뀌는 방식입니다. 근엄한 조언보다는 재치 있는 답변부터 과연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은 돌직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답변이 존재합니다.
역 질문형 답변이 가장 많습니다. 지난해 '전두환 저격수'로 불린 임한솔 전 정의당 부대표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취직 질문을 받을 경우 "100세 인생인데, 퇴직 후 계획은 세우셨어요?"라고 되묻는 형식입니다. 요즘 대세라는 펭수의 매니저였던 EBS '자이언트 펭TV' 박재영 PD는 결혼 안 하냐는 질문에 "했었는데 기억 못 하시는구나?"라는 허를 찌르는 답변을 보내 왔습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장하나 활동가는 모든 답변에 마치 여음구처럼 "새해 첫날부터 기분 나쁘게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를 덧붙였습니다. 예를 들어 '애인은 있니?'라는 질문에 "엊그제 헤어졌어요. 새해 첫날부터 기분 나쁘게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라고 답하는 식입니다. 가능하다면, '형돈이와 대준이'에게 의뢰해 랩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입니다. 제목은 "새해 첫날부터 기분 나쁘게."
명절마다 대답의 끝을 웃음으로 얼버무렸을 청춘들에게 '명절봇'을 권합니다. 더불어 그들의 어색한 웃음을 유발했던 어르신들께도. 물론 명절봇이 불편한 모든 질문에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불편한 질문'의 존재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이제 '명절봇'을 직접 경험해 보시길. 건투를 빕니다!
> '명절봇' 바로가기 http://omn.kr/mbot
> '명절봇'에 참여한 분들-가나다순
고재열(시사IN 기자), 권영진(대구광역시 시장), 박재영(EBS자이언트펭TV PD), 박정훈(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서부원(살레시오고등학교 교사), 양희문(MBC 성우), 이주영(오마이뉴스 기자), 이철우(경상북도 도지사), 이태경(KBS PD), 임한솔(전 정의당 부대표), 장하나(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조희연(서울시 교육감), 채이배(바른미래당 의원), 하태경(새로운보수당 의원), 홍성국(혜안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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