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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친밀한 폭력에 주목하지 않는가?

[장애여성 인권상담 이슈 리포트 ③] '통제자'에서 함께 일상을 바꾸는 동료로

등록 2020.01.28 17:46수정 2020.01.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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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유진아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편집자말]
"우리 00이는 혼자 거기 못가요. 선생님이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혼자 오지 말라고 이야기 해줘요. 우리 애 자꾸 불러내지 말고" <공감회원 OO 어머니>

'보호/도움'이 필요한 존재, 그리고 이로 인한 평등하지 않은 관계는 극단적인 빈곤과 폭력에 노출된 몇몇 장애여성들의 경험이 아니다. 하루의 많은 순간 장애여성들은 부모, 선생님, 활동지원사에게 연애라는 극히 사적인 영역은 물론 외출까지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늦은 외출은 위험한 일이며 핸드폰 패턴을 공유하지 않으면 낯선 사람을 만날 위험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언제든 압수당할 수 있다. 일상의 통제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제도화되기도 한다. 하루 8시간 근무를 하는 보호 작업장은 직업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의 공간이 보호의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작년 한해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이 지원했던 차별 및 인권 침해 78건, 폭력 26건의 가해자 대부분은 가족, 연인, 지인 관계로 불릴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학대/차별의 문제를 시설이라는 공간에서 타인 혹은 종사자가 일으키는 특정한 문제로 한정 지어 생각하려 한다. 함께 살아온 가족/연인 등은 장애여성을 보호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견고한 '요보호프레임'이 깨지지 않는 이상, 장애여성은 내가 사는 지역 속에서 선택을 제한당하고 통제당하며 동등하게 관계 맺고 싶지 않은 대상으로 고립되고 만다.

연애와 폭력의 긴밀한 역동, '피해 혹은 선택'으로만 규정되는 문제
  
 인권상담포스터
인권상담포스터장애여성공감
 
고립되고 통제되는 일상 속에서 장애여성은 연인과의 관계를 사랑/연애로만 욕망하지 않는다. 장애여성은 동등하게 나와 대화하지 않는 주변인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관계의 확장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원가족 내에서 폭력과 차별을 경험해서 혹은 빈곤한 자원/관계를 이유로 탈가정 하여 연인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도가 성적인 관계를 가능케 하는 사이로 '발각'되었을 때 이 관계는 문제적인 사건으로 구성되거나 단절을 강요받는다. 실제 공감에 섹슈얼리티 관련 상담을 의뢰한 사례 대다수는 장애여성의 연애에 대해 멈추거나 정정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여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감은 주변인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통제와 차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2019년 상반기에 지원하였던 경제적 착취와 관련된 상담의 대다수 가해자가 친밀한 관계, 특히 연인관계를 바탕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관계를 가/피해 혹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간단한 틀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제한된 관계 내에서 선택받지 못했던 경험을 주되게 쌓아왔던 장애여성들은 호감/선택의 제스처만으로도 쉽게 친밀함을 느낀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때로 '여성'으로의 인정, 감정의 충족, 의식주 혹은 안전함 등 시급한 과제가 해결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는 남성들에게 가사노동을 수행하거나 여성으로서의 몸이 이용당하는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또한 명의도용을 통한 부채형성, 수급비수탈과 같은 경제적인 착취 등의 '대가'를 지불토록 한다. 그러나 애정이라는 친밀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관계는 피해자로 증명되지 못하면 단순히 장애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해석되고, 이런 관계에서 발생하는 통제와 차별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긴다.

'(그 사람이 힘들다고 하니)갚지 말라고 했어요'라는 이야기는 장애여성의 온전한 동의일까? 관계단절에 대한 두려움, 고립감, 다 갚아준다는 회유와 설득,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친절함을 떠올리며 복잡한 감정과 상황 속에서 발화되는 문장이다.


반면 이런 관계의 취약성을 알고 있는 상대의 의도적인 행위와 발화, 사랑한다면 기다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카톡 메시지와 전화는 표면에 드러나는 문장 속 의미조차 해석되지 않는다. 이 두 관계에서 남겨진 대화는 장애여성의 '갚지 말아라', '(나도)보고 싶다'일 뿐이다. 관계의 친밀함을 토대로 강요된 착취를 증명하고 설명하는 책임은 '친밀함'을 의도적으로 이용한 상대방이 아닌, 친밀함'을 내보였다는 장애여성의 몫으로 남겨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제한된 관계의 확장만이 가능한 협소한 경험/관계, 통제되는 존재로의 삶 등의 맥락은 해석하지 않는다. 피해/가해이거나 본인의 선택이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여성의 이러한 새로운 관계로의 확장은 어떻게 고민되고 해석되어야 할까?

공감은 도전과 시도, 거래 등 여러 가지 논의를 이어갔으나 결론짓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피해/가해 혹은 자발적 선택으로만 바라보려 할 때, 장애여성의 경험은 타인에 의해 해석되고 결정될 뿐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장애여성이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공간,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커뮤니티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제/배제당하는 소수자가 아닌 지역사회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함께 어떠한 편견을 깨야 하는 것인지, 장애여성들은 스스로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길 원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장애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삶을 변화하고 선택하는 주체로 바라보아야 하며 그 속에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른 삶의 전략은 그때 비로소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장애여성공감 잡지 [마침,] 22호에 실린 원고를 수정한 것입니다.
#인권상담 #친밀한폭력 #친밀성과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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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와 기준이 가진 문제에 공감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1998년에 창립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장애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며,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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