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음성
이나연
남편이 회복해서 출근한 지 얼마 뒤, 이번엔 쌍둥이 남매가 번갈아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건강하던 딸 아이가 무섭게 열이 나며 아파하더군요. 병원에 진료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신종플루인 것 같다'며 검사를 하자고 합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미리 타미플루를 먹으라는 처방까지 받았어요. 이틀 뒤,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통보를 받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당시 저희 집에는 귀 체온계만 있었습니다. 버둥대는 아이들 때문에 체온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마형 체온계를 추가로 구입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평소 가격보다 20~30% 올랐습니다. 마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마스크나 손세정제의 가격이 치솟은 것처럼 말입니다.
줄줄이 강연 취소된 전문강사의 이야기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하자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는 영업을 중지하고, 인근 유치원·어린이집 등에는 휴원령이 내려졌습니다. 각종 모임이 취소될 정도로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언론보도도 이어집니다. 2015년 메르스가 유행할 때, 남편 회사에서는 회식을 지양하라는 권고가 있었으며 밖에서 점심을 먹지 말고 동료들과도 부딪히지 말라면서 한 달가량 도시락까지 지급됐다고 합니다.
외식산업뿐만 아니라 음악회나 영화·공연관람, 강연 등의 문화산업도 타격을 입습니다. 특정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더 쉽게 확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요즘엔 책을 출간하면 저자 강연, 소규모 세미나 등을 통해 홍보 활동을 합니다. 지난해 12월 생애 최초로 책을 펴낸 저는 2월 한 달간 주말마다 빡빡하게 강연을 잡아뒀습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참이었습니다.
블로그 이웃이자 강의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아이 친구의 엄마(전문강사)로부터 오래전부터 예약돼 있던 기업 신입사원 연수를 비롯해 각종 승진자 연수까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뒤, 초보 저자인 저의 강연도 당연히 취소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서울의 한 구립도서관에서 모든 세미나를 취소한다는 전화를 받으니 확실히 실감이 나더군요. 시국이 시국인만큼 책 홍보보다 위생·안전관리에 힘써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미나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편집자에게 전했습니다. 저보다 2배는 더 서운해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라는 안타까운 탄성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 판매 실적이 곤두박질쳤던 출판계 분위기를 전해줬어요. 출판사마다 사정은 달라겠지만 신간의 제작이나 배본 일정을 미룬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신종 코로나와 예기불안
당시에는 사람들이 아예 서점 나들이를 안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꼭 필요한 책만 알음알음 온라인에서 주문했는데,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등 사회 분위기를 무겁게 하는 사고가 이어져 책 읽을 마음의 여유까지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10년 넘게 출퇴근 지하철 속 틈새 시간을 활용해 독서하는 습관을 가졌던 저 역시 마음이 불편한 시기엔 책이 눈에 안 들어오더군요. 편집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돌이켜 보니 신종플루와 메르스로 5~7개월가량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입니다. 학교·학원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 부모들의 한숨과 공포를 보고 있자니 어느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지금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비슷한 공포감이 반복될 때마다 소독제·마스크·체온계 등의 보호 물품과 생수·간편조리밥 등의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고, 가격이 폭등하고, 허위정보가 확산되곤 합니다. 신종플루 이후 1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사람도 사회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바이러스 이후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요? 아무도 미래를 예측하고 답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신종코로나의 확산으로 '나도 전염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리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다가온다고 생각되는 경우 생기는 불안증세인 예기불안(expectation anxiety , 豫期不安)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렇게 불안해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입니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오히려 상황에 중독되면서 더 에너지 소모적인 불안을 조장하게 되곤 합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님의 책 <심야치유식당>에서 사람들은 소진된 에너지가 서서히 차오르기를 기다리기보다 최대한 빨리 보상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며 뭔가를 찾아헤매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카톡방이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확진 환자가 1명씩 늘어날 때마다 관련된 뉴스를 공유하고 마스크값이 치솟는다는 정보에 마스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핫딜 링크를 공유하는 행위가 바로 그런 것들 아닐까요?
그래서,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