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보관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념사진. 단기 4288년(1955년)에 어느 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소년들 중 누가 책방으로 책을 보냈을까.
조경국
이제 겨우 7년째 헌책방을 꾸리고 있지만 주인 잃은 책이 책방까지 들어오는 사연은 대부분 슬프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어떤 물건이 있던 자리를 떠난다는 건 곧 사랑을 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니까. 책을 읽을 수 없을 만큼 건강이 나빠지거나 책을 아끼던 이가 세상을 떠나 버려진 책들이 책방에 올 때는 책들도 그만한 우울을 품고 있는 듯하다.
만약 본인이 정리했더라면 분명 빼놓거나 따로 보관했을 물건들이 책과 함께 책방에 왔다면 필시 슬픈 사연이 배경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도 자신의 행복했던 지난날을 담은 사진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는 드물 것이다. 아무래도 사진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거나, 챙길 사람이 사라진 거라 생각할 수밖에.
단기 4288년 5월 18일. 1955년에 찍힌 기념사진은 책방에서 보관하고 있는 꽤 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전쟁의 포화가 미치지 않았던 듯 교정엔 큰 나무가 서 있고 건물은 훼손된 것 없이 깨끗하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어른스런 표정을 짓고 학생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5월이면 입학식도 졸업식이 있는 달도 아니고 사진의 배경을 보면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간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일이 있어 이 사진을 찍었던 것일까.
사진 속 10대였던 그들은 지금쯤 적어도 팔순을 넘겼을 것이다. 사진은 남았으나 젊음은 간 곳 없이 떠나 버렸다. 아마 이 사진의 주인공이었던 소년은 누굴까,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분명 책을 좋아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의 어느 시기에 책을 정리해야 할 때를 맞이했겠지. 평생 모으고 읽었던 책을 누군가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헌책방으로 보낼 때(보낸 걸 알게 될 때) 심정은 어떨까.
가끔 손님이 책과 잃어 버린 사진을 찾아 책방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경우는 딱 한 번뿐이었다. 사진이 아닌 아버지의 편지를 찾는 손님이었다. 책 속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편지는 아무리 찾아도 존재하지 않았다. 책 갈피에 끼워두고 잃어버린 물건은 우연이 아니면 찾기 힘들다. 그 우연을 마지막에 경험하는 이가 바로 헌책방 책방지기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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