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별들의 고향 > 포스터
화천공사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내게 있어 그냥 재미있는 구경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서워도 재미있고, 슬퍼도 재미있고, 웃겨도 재미있는 요상하게 신기한 구경거리가 바로 '영화'였다.
돈이 생기면 극장으로 달려가서 청춘을 탕진했으나, 극장을 나오면 무슨 영화를 봤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별들의 고향>과 <영자의 전성시대>는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이 영 달랐다. 그 두 편의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가 서울에 와서 시내버스 '안내양'을 하거나 식모를 살거나 중국집 '뽀이'(보이, Boy)를 하는 내 고향의 누이와 형들을 연상케 하며, 내 뼛속까지 들어와 오랜 시간 나를 고문했다.
'이게 뭐지? 우리도 결국은 저렇게 죽어나가는 것인가?'
내 생애 처음으로 해보는 심각한 의문이었다. 오랜 시간 괴로웠다. 날마다 슬펐다. 딱히 무슨 이유도 없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내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과 그 집 주인 '아줌마'의 돈벌이 방식이었다.
그 집은 일본식 이층 목조주택으로 전후좌우 빙 둘러 연탄아궁이만 뚫린 셋방이 열세 개였다. 담이 없는데도 육중한 담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넓이가 이 미터도 채 안 되는 대문 위에까지 콘크리트를 쳐서 창고를 만들어놓은 까닭에 안에서 봐도, 밖에서 봐도 늘 숨이 막히는 희한한 집이었다.
열세 개의 방 중 열한 개는 이른바 '아가씨'들이 세 들어 살았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내가 살았고, 다른 하나는 젖먹이 아이가 딸린 부부가 그 작은 방에서 살고 있었다. 낮에는 잠을 자거나 집 주인과 화투를 치고, 해가 질 무렵이면 출근했기에 나는 아가씨들의 직업이 뭐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열일곱 나이에 월수 얼마 보장이라는 전봇대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곳이 룸살롱이었고, 웨이터보조라는 직함을 달고 다섯 달 남짓 있는 동안 돈벌이는커녕 손님들이 먹다 남긴 안주나 술로 겨우 배를 채워야만 했던 나로서는, 그 아가씨들의 직업을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게 돼 있었다.
아가씨들은 일명 '호스티스'였다. 출근과 동시에 '멤버'라는 자에게 출근비 명목의 현금을 지불해야 하는 괴상한 직업이었다. 만약 그날 돈이 없어서 출근비를 못 내면 멤버는 그녀들을 룸에 넣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달러돈을 내서라도 출근비는 반드시 지참하고 출근을 해야 했다. 룸에 들어갈 차례가 돌아오면 영업부장이 다가와서 한 마디 위협적으로 속삭인다. '손님 몰래 술을 마구 버려야지 안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패널티를 준다'고.
룸살롱의 위계질서는 조폭 세계와 비슷했기에 그녀들의 손님 몰래 술 버리는 기술은 정말 뛰어났다. 그렇다고 백 퍼센트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손님들 손에 죽도록 얻어맞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당시 룸살롱 호스티스란, 돈은 돈대로 뜯기고, 덤으로 얻어맞는 게 의무인 직업이었다. 그런 그녀들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아줌마한테도 뜯김을 당하고 있었다.
큰아들이 고속도로 순찰대를 나가는 경찰관인 까닭에 날마다 현금이 얼마씩 들어온다는 자랑을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 올리던 주인아줌마는 일수놀이의 달인이었고, 민화투건 육백이건 고스톱이건 쳤다 하면 돈을 따는 화투치기의 달인이었다. 전기료와 수도료를 자기네는 식구가 다섯에 냉장고며 세탁기며 온갖 가전제품을 사용하면서도 무조건 가구당 얼마 하는 식으로 분배해 뜯어먹는 후안무치의 달인이기도 했다.
세입자들이 뭘 몰라서, 바보라서 당하는 건 아니었다. 알지만 더러워서 당해주는 것일 뿐이었다. 더러움의 주인공은 역시 '돈'이었다. 세입자들 중 누구 한 사람도 주인아줌마에게 빚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설령 지금 당장은 빚이 없다 해도 이제 곧 빚을 지게 돼 있었다. 그 누구도 정해진 날짜에 월세를 정확히 낼만한 사람이 없으니 어쩔 것인가.
특히 아가씨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일수를 찍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녀들은 돈 쓸데가 엄청나게 많았다. 누구는 고향의 부모님 약값으로, 누구는 도망 중인 오빠의 도피 자금으로, 또 누구는 동생들 학비로, 각종 기타 명목으로 그녀들은 항상 돈에 쫓기고 있었고 습관적으로 일수놀이의 달인 주인아줌마에게 손을 벌렸다.
주인아줌마는 일수놀이의 달인답게 십 만원이 넘는 돈을 빌려주는 법이 없었다. 큰돈을 주었다가 야반도주라도 하면 머리 아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오 만원 아니면 십 만원이었다. 오 만원은 하루에 오천 원씩 열다섯 번을 찍어야 하고, 십 만원은 역시 하루에 오천 원씩 서른 번을 찍는데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비싼 이자였다. 그나마도 미운털이 박히면 빌릴 수조차 없다.
미운털이란 이를테면 전기료나 수도요금 같은 '하찮은 일'로 따진다거나, 화투를 치자고 오라 했는데 아프다고 안 온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때문에 아가씨들은 오늘은 나, 내일은 너 하는 식으로 최소한 사흘에 한 번씩은 교대로 주인아줌마와 화투를 쳐서 돈을 잃어줘야 했고, 점심 때가 되면 점심을 사줘야 했고, 탕수육이건 통닭이건 느닷없이 먹고 싶어 죽겠다고 하면 각자 얼마씩 추렴해서 먹여줘야만 했다.
그런 호랑말코 같은 장면들을 무수하게 보면서도 나는 속으로나 침을 뱉을 뿐이었고,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 같은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영화 <별들의 고향>과 <영자의 전성시대>를 보고 나서 간덩이가 터질 정도로 커져버렸던 것인지 뜬금없는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이 잦아지고 있었다.
'아들은 교통경찰관으로 날마다 밖에서 운전기사들한테 삥을 뜯어오고, 어미는 그 돈으로 일수놀이를 해서 돈을 가마니에 그냥 쓸어 담는구나.'
그런 너절한 생각에 빠져 있는 시간이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웠다. 그 바람에 굴러오는 볼링공을 제때 피하지 못 해서 정강이가 으깨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함께 일하는 또래의 사내녀석이 아는 체를 해 왔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다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단 일 초의 망설임도 고민도 없이 즉각 "너 그 돈을 어디에 두는지 알지?"라고 했다.
정의로운 도적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