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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진학 실패 후 방황... 아이의 반항은 누구를 향한 걸까

[학교의 아이들] '특목고'를 원했던 T의 방향 찾기

등록 2020.02.25 11:26수정 2020.02.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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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입시생의 3월은 시간이 빨리 흐른다. 4월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줄줄이 과학고등학교 입학 전형 일정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기에 맞춰 서류를 준비하고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준비하면 외고, 예고를 거쳐 특성화 고등학교에 이어 일반계 고등학교까지 진행된다. 1년을 타임 스케줄에 맞춰 따라가다 보면 한 해가 마무리된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필자가 중학교 선생님으로 10년간 있으면서 내 손으로 딱 한 명 보내 본 학교였다. 그곳에 간 아이는 매 시간, 매 순간을 알차게 보냈다. 체육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활발하게 움직이고, 공부할 때 무섭게 집중했다. 좋아하는 과목만 따로 하지 않았고 모든 과목에서 빛을 발했다. 인성도 훌륭했다.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학교에 간 학생들이 모두 그 아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인성이 돋보이는 그 아이가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진심으로 빌었다. 국가의 인재가 되길 바랐다. 뛰어난 지능은 인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아이 같아야 바람직하다고 얘기했다.

흔들리는 시간
  
나에겐 T라는 제자가 있다. T는 한국과학영재학교에 가길 희망했다. 학교 이름이 부모의 입에서 나올 때부터 나는 진학이 힘들다는 걸 예상했다. 

필요한 공부만 가려서 하는 아이였다. 진로와 무관한 과목은 대충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문과 과목을 등한시했다. 그런 마음을 당당하게 얘기할 만큼 아이는 순진했다. 아이의 어머니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 본인도 아이도 도전을 원한다고 말했다.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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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재학교와 과학고 불합격' 두 번의 실패는 아이의 방황에 가속 페달을 밟는 상황을 만들었다. ⓒ unsplash

 
예정된 실패였지만 타격이 컸다. 발표 이튿날 아이는 학교를 결석했다. 그 후로 드문드문 늦게 등교했다. 나는 아이에게 다음 학교에 집중하자고 했고 거부감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입시 요강을 보며 1학기 시험까지는 최선을 다하자고, 그래야 다음 전형을 잘 대비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행동은 말과 달랐다. 수업 시간 자세가 흐트러졌다. 수행평가 과제를 늦게 제출하는 일이 잦았고, 간간이 몸을 옆으로 비틀어 누워 있었다. 여러 교과 선생님들의 걱정이 이어졌다. 점수가 아이에게 중요한 건 알겠는데 깎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원칙대로 하지만 입시를 앞둔 아이의 내신 서류 점수가 낮아질 것을 염려했다.

일탈은 처음 한 번이 힘들지 그다음은 쉬웠다. 결석과 지각이 잦아졌다. 수행평가 점수가 떨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점수에 예민했던 아이의 의욕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될 대로 되라는 말이 아이 입에서 나왔다. 근태에 무단만 없으면 서류 전형에서 큰 불이익이 없는데 아이는 그것을 간신히 지켰다. 결국 아이는 비슷한 성적의 아이가 과학 고등학교 합격의 기쁨을 맛볼 때, 실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두 번의 실패는 아이의 방황에 가속 페달을 밟는 상황을 만들었다. 과학 고등학교 입시가 완전히 끝난 10월부터는 학교에 아예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부모는 원인을 학교에서 찾으려고 했다. 친구들이 괴롭혔다고 했다. 다음엔 교사에게서 원인을 찾았다. 아이를 힘들게 했던 교사를 지목했다. 아이는 부모에게 그게 아니라고 소리 질렀다. 어쩌다 잠깐 등교했고 어느새 학교에서 나갔다.

학교는 상담 교사와 함께 아이의 집을 찾았다. 어렵게 아이의 방에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거친 말속에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들어있었다. 아이는 험한 소리를 뱉었고 부모는 얼굴을 붉혔다. 이후 부모는 학교 상담을 거부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을 택했고 그들은 학교 폭력을 거론했다. 아이들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일반고에 가다


아이를 일반 고등학교에 올려보낸 후 나는 다른 학교로 옮겼다. 4월 초쯤, 그 아이가 입학한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T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 맞느냐'고 물었다. 아는 이름이 나와 전화한 이유를 묻자, 고등학교 선생님은 T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정 교과의 교사와 언쟁이 있었고 처음엔 수업을 거부하다 이젠 학교를 거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중학교 때도 제대로 안 나갔는데 졸업도 했고 고등학교도 들어왔다고 말했다고 했다. 물론 결석으로 처리도 안 되었다고도. 

아이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하루에 한 번 학교로 꼭 불러들였고, 수업엔 간혹 안 들어갔지만 학교에는 나왔다가 가도록 조치했다. 학교 규칙상 잠깐이라도 학교에 등교하면 조퇴이거나 지각, 둘 중 무거운 것으로 처리되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조퇴와 지각으로 처리된 날이 많았다. 본인은 수업에 참여를 안 했으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걸 근거로 삼아 현재의 담임에게 학교에 안 나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나는 무단결석과 병결이 많았지만 무단 지각, 병 지각 등 지각과 무단 조퇴, 병 조퇴 등 조퇴를 번갈아 쓰며 수업일수를 겨우 채워 아이를 고등학교를 진학시켰다. 3학년의 모든 날을 난 그 아이를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교하기 이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그 아이에게 신경을 쏟았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전 8시가 되기 전에 T의 어머니로부터 아이가 등교를 안 하려고 한다는 전화가 왔고, 오후 9시에는 아이가 집에 안 들어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중간에 무수히 많은 전화 통화와 어머니의 방문 상담까지 합하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매 시간 아이를 위해 힘을 썼다. 남편은 더는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하거나 옆에서 큰 소리로 그만 전화하라고 상대방에게 다 들리게 말하기도 했다. 민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 아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내 가족들도 참기 어려운 상황까지 갔던 터였다.

그 후의 선택?

고등학교 진학 후 아이에게 문자를 여럿 보냈다. 드문드문 답장이 왔으나 어느 순간 끊어졌다.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 있으려니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현재 고등학교 담임의 전화를 받고 통화를 시도했고 문자를 보냈다. 다시 중학교 3학년 담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고 문자의 답장도 없었다.

이제는 그 학교의 몫이었다. 마음 한편에 짐을 얹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수업 시간,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제자로부터 T의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지만, 온라인 게임 안에서 더 많이 만났고 게임에 몰입했다고 했다. 그러고 어느 순간 학원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사라졌다고 했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다시 그 아이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 아이는 망가져 가는 자신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가족을 얘기하며,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담임과 마주하며 울었다. 정신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지만 아이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이는 '학교 교육의 문제'를 얘기했다. '제도권 교육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했다.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했는데 길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너무 큰 파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른스러운 소리일 뿐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들렸다. 
#특목고입시 #한국과학영재학교 #제도권교육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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