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오후 5시 부산경남경마공원 주차장에서 열린 고 문중원 경마기수의 영결식.
노동과세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속에, 그것도 사방이 어두워진 후에야 고(故) 문중원 경마기수의 시신이 도착했다. 9일 오후 7시경 경남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서 문중원 기수의 하관식이 진행됐다.
고 문중원 기수가 목숨을 끊은 지 102일만에 장례식이 열린 것이다. 고인은 2019년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숙사에서 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문중원열사대책위', '고문중원기수시민대책위'와 '한국마사회적폐권력청산문중원열사노동사회장장례위원회'(아래 장례위)는 이날 오후 영결식을 치렀다.
당초 장례위는 이날 오후 2시 부산경남경마공원 주차장에서 영결식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한국마사회가 공공운수노조‧유족과 했던 합의서에 대한 공증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사회 측은 공공운수노조에 "시민대책위를 마사회적폐청산위원회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에 반발, 평화선언을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장례위는 영결식을 미루고 부산경남경마공원 본관에서 항의농성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물이 파손되기도 했다.
이후 '민주노총문중원열사대책위'는 마사회측과 "마사회는 3월 6일 작성한 모든 합의가 이행되도록 하고, 마사회 합의서에 대한 공증은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와 부산경남경마본부가 수일 내에 진행한다"는 합의 내용을 밝혔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이날 오후 5시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마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들에게는 잘못된 결정을 하고 떠난 못난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부디 행복하게 살아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떠났던 경마기수 문중원을, 이제는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묻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당신의 가족과 동료와 살아 있는 우리들은 마사회의 썩은 적폐를 끝장내고 열사의 염원을 이루어 내는 길에 두 손 굳게 잡고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조사에서 "길고도 험난한 100일간의 투쟁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일단락되었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만큼이나마 결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절실함이 많은 이들의 연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않도록 하는 일은 문중원 기수의 피맺힌 한을 풀기 위해 유족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수많은 죽음들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아프지 않은 죽음이 없을 것이다. '일하다 죽지 않게, 다치지 않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고 문중원 기수님이 원했던 세상을 꼭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고인의 부친 문국옥씨는 "중원이의 죽음을 접하고 억울함과 분노에 울고만 있던 저희 유가족들은 민주노총 관계자 분들과 여러 시민사회단체 모든 분들의 힘을 모아 마사회와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며 "억울하게 죽은 중원이 한을 풀고 장례를 치러 이제는 경쟁도 비리도 없는 저 하늘나라에서 별이 돼 편히 쉴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인사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문중원 기수 사망 이후 유가족과 전국공공운수노조는 김해 한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정부청사 앞으로 시신을 옮겨 시민분향소를 운영해 왔다.
이후 2월 27일 경찰과 용역이 시민분향소를 철거했고, 시신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되었다. 오랜 농성 끝에 지난 6일 유족과 공공운수노조는 마사회와 '문중원 기수 죽음의 재발방지를 위한 합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