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는 펜과 공책만 있다면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
조경국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영상 강의를 듣고 있고(빨리 학교에 보내고 싶다!), 재택 근무도,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한 거리두기도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생활 방식을 바꾸어 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예전처럼 지나가겠거니 생각했는데, 사스와 메르스 때와는 차원이 다른 듯하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줄고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무얼할지 고민이라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는 건 어떨까.
처음부터 필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혼자 놀거리를 찾다 필사를 하게 된 것 뿐이다. 10년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활했고 헌책방에 다니길 좋아하다 보니 필사가 자연스런 취미가 되었다.
책을 읽다 멋진 문장을 만나면 누구나 한 번쯤 옮겨 써보고픈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 않나. 필사를 즐기기 전엔 읽기만 할 뿐 따로 써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엔 필사를 단순히 공부의 방편이라 생각하고 천자문부터 베껴 쓰기 시작했다.
<김성동 천자문>(청년사)을 놓고 한자 공책을 사서 매일 한 쪽씩 베껴 썼다. 2006년 소설가 김성동 선생님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러 간 것이 천자문 필사를 하게 된 계기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큰 책으로 보라"고 하시며 <김성동 천자문>을 주셨다. 하루 한 시간쯤 투자해 음과 뜻, 풀이까지 베껴쓰면 보름 정도(한자공책 13쪽이면 천자문을 옮길 수 있으니 정확히 따지면 13일이 걸린다)면 천자문 쓰기를 끝낼 수 있었다. 숙달이 된다면 조금 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김성동 천자문>과 한학자였던 염재 김균 선생이 우리 역사를 천자문에 담은 <대동천자문>(푸른숲, 절판)을 공책에 옮기며 필사하는 재미를 깨닫게 되었다. 심심풀이로 한자 공부나 한다고 시작한 것이 점점 글씨를 쓰는 재미, 문장을 옮기는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여 문장을 곱씹는 일, 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