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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작만 하고 끝나던 필사, 이걸 몰라서였다니

[슬기로운 격리생활] 경쟁할 필요 없이 홀로 즐기는 일... 마지막 목표는 내 글쓰기

등록 2020.04.25 15:07수정 2020.04.2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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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는 펜과 공책만 있다면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
필사는 펜과 공책만 있다면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조경국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영상 강의를 듣고 있고(빨리 학교에 보내고 싶다!), 재택 근무도,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한 거리두기도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생활 방식을 바꾸어 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예전처럼 지나가겠거니 생각했는데, 사스와 메르스 때와는 차원이 다른 듯하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줄고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무얼할지 고민이라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는 건 어떨까.


처음부터 필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혼자 놀거리를 찾다 필사를 하게 된 것 뿐이다. 10년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활했고 헌책방에 다니길 좋아하다 보니 필사가 자연스런 취미가 되었다.

책을 읽다 멋진 문장을 만나면 누구나 한 번쯤 옮겨 써보고픈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 않나. 필사를 즐기기 전엔 읽기만 할 뿐 따로 써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엔 필사를 단순히 공부의 방편이라 생각하고 천자문부터 베껴 쓰기 시작했다.

<김성동 천자문>(청년사)을 놓고 한자 공책을 사서 매일 한 쪽씩 베껴 썼다. 2006년 소설가 김성동 선생님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러 간 것이 천자문 필사를 하게 된 계기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큰 책으로 보라"고 하시며 <김성동 천자문>을 주셨다. 하루 한 시간쯤 투자해 음과 뜻, 풀이까지 베껴쓰면 보름 정도(한자공책 13쪽이면 천자문을 옮길 수 있으니 정확히 따지면 13일이 걸린다)면 천자문 쓰기를 끝낼 수 있었다. 숙달이 된다면 조금 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김성동 천자문>과 한학자였던 염재 김균 선생이  우리 역사를 천자문에 담은 <대동천자문>(푸른숲, 절판)을 공책에 옮기며 필사하는 재미를 깨닫게 되었다. 심심풀이로 한자 공부나 한다고 시작한 것이 점점 글씨를 쓰는 재미, 문장을 옮기는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여 문장을 곱씹는 일, 필사
 
 처음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시집이나 짧은 수필을 베껴 쓰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시집이나 짧은 수필을 베껴 쓰는 것이 좋다.조경국

무엇보다 필사는 온전히 혼자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혼자 있는 걸 그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천성과도 잘 맞았다. 10년을 살았어도 서울 생활이 익숙해지지 않았던 건 골 깊은 곳에서 나고 자란 때문이기도 했지만,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어딘가에 엮이는 걸 적이 두려워하는 성격 탓이기도 했다.


실제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오곤 헌책방을 차리기 전까지 2년쯤 가족 외에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내 보았으나 적적하거나 외롭다 느끼지 못했다. 타고난 성격 탓도 컸지만 필사하는 습관이 폐관수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비하여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나게 됩니다.

필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곤 하는데 필사의 가장 큰 방해꾼은 '글씨'인 듯하다. 위 글은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 나오는 글이다. 필사를 하고 싶지만 글씨가 너무 못나서 필사를 하고픈 마음이 사라진다는 이야길 자주 듣는다.

글씨가 반듯하고 예쁜 사람도 있지만 펜을 잡았을 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필사는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여 문장을 곱씹는 행위지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필재가 없더라도 정성껏 또박또박 쓰다보면 조금씩 글씨가 나아지기 마련이다. 굳이 글씨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무언가 이루고자 할 때는 항상 수련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하루에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요즘은 메모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사용하니 펜이나 수첩을 들고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들다. 쓰지 않으니 글씨도 늘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필사는 경쟁할 필요가 없는 순수하게 홀로 즐기는 일이다. 못난 글씨여도 자투리 시간이라도 내어 쓰다보면 '단련의 미'와 필사의 재미를 깨닫게 된다. 필사에 재미를 붙였을 때 글씨 교정을 위해 일부러 초등학교 저학용 칸이 있는 국어공책에다 필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또박또박 단정한 글씨를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백석이나 고정희나 이태준이나 박완서나… 사랑하는 작가들의 문장을 베껴쓰다 보면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른다. 그 감정은 혼자 견딜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되는 자양 같은 것이다. 필사는 홀로 조용히 즐길 수 있는 놀이이자 마음공부일 수도. 그런데 박완서 선생도 글씨 때문에 고민했던 작가였다. <세상에 예쁜 것>(마음산책)에 나오는 글이다.
 
심사위원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몇 장 안 읽고 던져 버릴 것 같은 예감으로 속을 끓인 것은 내가 워낙 졸필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글씨에서도 연령과 교양, 심성 등, 어느 정도 쓴 사람의 인품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내 글씨는 우리 아이들까지도 엄마 글씨는 국교생 글씨라고 놀릴 정도로 초등학교 3학년 정도에서 멈춰 버린 것 치졸하다. 그래도 또박또박 알아보기 쉽게는 섰는데 그 후 다작하는 작가가 되면서 망가지기 시작하더니 내가 슨 글씨를 내가 못알아볼 악필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워드 프로세서가 등장해 나를 구제해주었다.

필사의 마지막 목적, 베껴 쓰기 아닌 나의 글 쓰기
 
 두 번 '완필'했던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두 번 '완필'했던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조경국
 
필사할 마음이 생겼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손에 익은 펜과 가지고 다니기 적당한 공책이나 수첩을 마련하는 일이다. 펜이야 쉽게 구할 수 있을테고 공책이나 수첩도 쓰다만 것이 집안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이다. 필사할 대상은 처음엔 짧은 글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30분 안에 충분히 한 편을 베껴쓸 수 있는 시나 짧은 수필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짧은 글을 필사하다 어느 정도 필사에 대한 감을 잡고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목표를 크게 잡고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쓰기도 한다. 지금까지 두 번 '완필'했던 책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까치, 최승자 옮김)였다.

책 전체를 필사하는 일은 지난하지만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어서 쓰다보면 언젠가는 마지막 쪽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침묵의 세계>는 요즘같은 시절에 읽는다면 깨닫는 바가 더 클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좋아하는 문장이다. 침묵과 필사는 서로 어울리는 동무라 생각한다. 필사할 때는 자연스레 입을 닫게 되니까.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은 그야말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위대하다. 침묵은 존재한다. 고로 침묵은 위대하다. 그 단순한 현존 속에 침묵의 위대함이 있다. 침묵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렇게 필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작가의 글의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긴다. 필사를 하기 전과 후를 나눠보면, 그 전엔 한두 문장도 내 생각을 옮기기 힘들었는데 필사를 꾸준히 하다보면 글을 쓰기가 더 수월해지고 또 다듬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필사의 목적은 남의 글을 베껴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글을 쓰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요즘 같은 시절 무언가 새롭게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사를 권하고 싶다. 졸저 <필사의 기초>(유유)에서 옮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마흔쯤에야 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는 '쓰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을 '베껴 쓰는 일'이다. 베껴 쓰는 일은 꽤 오래 전부터 즐겨 했지만 예전에는 기계적인 놀이에 불과했다. 별것 아니라 여겼는데 하다 보니 단순한 재미 이상의 열예(悅豫)가 있다. 가까운 이들에게 주제넘게 권하곤 한다. 무엇보다 베껴 쓰기를 하고 있는 동안엔 나의 주체할 수 없는 가벼움에 잠시라도 납추를 얹는 느낌이다.

필사의 기초 - 좋은 문장 베껴 쓰는 법

조경국 지음,
유유, 2016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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