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책을 읽을 땐 글을 쓸 때처럼 자꾸 뇌가 내게 더 쉬운 길을 가라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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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몇 권의 책에선 '인터넷 없는 삶 살아가기' 실험에 나선 사람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실험을 시작했다고 했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주의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있다는 것, 주의력뿐 아니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 인터넷에 취해 있느라 스스로를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킬 기회를 제거해버리고 있다는 것.
6개월간 인터넷을 끊고 산 그들 삶에 찾아온 변화를 읽는 일은 즐겁고 뭉클하고 신났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아, 어떻게 인터넷을 끊고 산단 말인가'와 '인터넷을 끊고 살 필요까지는 없겠다'였다.
먼저, 인터넷을 아예 끊고 살 용기가 안 났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6개월이나 어떻게 인터넷을 끊고 살 수 있을까. 다른 한편, 과연 몇 개월 인터넷을 끊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책에서 본 그들 역시 6개월 후엔 모두 인터넷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인터넷 통제였다. 인터넷을 끊을 수는 없지만 인터넷을 통제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타이머 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내 주의력을 빼앗아갔다면 인위적으로라도 주의력을 붙들어두자는 의미였다. 주의력 저하에 가장 영향을 받을 때가 책을 읽을 때였으니, 책을 읽을 때면 타이머를 돌리기 시작했다. 20분씩. 20분을 다 돌면 또 타이머를 돌리고 돌리고. 이렇게 하루 두세 시간을 겨우 독서 시간으로 확보했다.
그후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간 내 스마트폰 배경화면엔 페이스북에 이어 인스타그램, 브런치, 밴드 등의 앱도 추가됐다. 당연히 내 주의력은 더 나빠졌다. 그래도 글을 쓸 땐 어느 정도의 주의력은 붙들어둘 수 있었는데, 이젠 글을 쓸 때마저 타이머가 필요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타이머를 돌려 20분만은 집중해서 쓰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날 보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자꾸 꼼수를 부렸고, 타이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글을 쓰면서, 내가 유독 언제 스마트폰에 손을 뻗나 관찰해보니, 하늘이 무심하게도 문장이 너무 써지지 않을 때였다. 5분, 10분 고민을 거듭해도 문장 하나를 써낼 수 없을 때, 앞으로 계속 앉아 있다고 해도 문장이 쉽게 떠오르지 않겠다 싶을 때, 내 뇌는 이 상황을 참기 힘들어했다. 인내가 필요하거나 깊은 사고를 요구할 때, 뇌는 내게 명령했다. 괜히 힘들게 글을 쓰지 말고, 그냥 얼른 스마트폰을 해.
글을 쓸 때도 이럴진대 책을 읽을 때야 말해 무엇할까. 가독성이 좋으면서 재미난 소설이나 에세이를3 읽을 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설득> 같은 고전 명작을 읽을 땐 '그만 읽고 자자'며 독서를 일부러 멈춰야 했으니까. 하지만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책을 읽을 땐 글을 쓸 때처럼 자꾸 뇌가 내게 더 쉬운 길을 가라고 설득했다.
이건 책을 읽는 것도 아니요, 글을 쓰는 것도 아닌 상황이 이어졌다. 책을 읽다가도 스마트폰을 하고, 글을 쓰다가도 스마트폰을 했다. 어렵사리 타이머를 통해 20분 독서나 글쓰기가 끝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20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정보,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들을 흡수하느라 바빴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 가면서도, 병원 소파에 앉아서도 스마트폰을 했다. 5분 전에 스마트폰을 했는데 또 스마트폰을 했다.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또, 또 스마트폰을 하다 보니 나는 자주 짜증이 났고 이 상황이 불쾌해졌다. 스마트폰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완전히 중독됐구나 싶었다. 그래서 순간 결심했다. 내일부터 하루에 8시간은 스마트폰을 하지 않기로.
스마트폰은 우울함을 보상해주지 못한다
3월 17일 아침부터 스마트폰 디톡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알람을 진동으로 바꾸고 브런치나 인스타그램 알람을 껐다.
오전 8시. 이제 오후 4시까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예외는 두었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는 받고(어차피 문자나 전화가 자주 오지도 않고 오더라도 주로 일 관련이므로), 온라인 서점과 도서관 앱은 사용하기로 했다. 약속이 있을 경우 지도 앱을 켜거나, 역시나 약속이 있을 경우 지인이 카톡(카카오톡)으로 약속 확인을 해오는 등의 급한 용무 때만 카톡을 허용하기로 했다.
디톡스를 갑자기 시작했기 때문에 마음을 다지기 위해 지금의 내게 도움이 될 책들을 읽었다. <시간 전쟁> 같이 시간 관리 전문가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느긋하게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핸드폰을 확인하는 빈도 차이였다."
나는 아무래도 중독이 된 것 같으니까 <크레이빙 마인드>를 읽으며 내가 중독이 된 원인을 찾으려 했다. 중독과 산만함에서 탈출하는 법을 소개한 이 책에서는 계기→행동→보상으로 이어지는 '보상에 의한 학습법' 때문에 우리가 중독에 빠진다고 말했다. '심심하다' 또는 '외롭다' 또는 '우울하다'(계기)→스마트폰을 한다(행동)→'재미있다' 또는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이 든다' 또는 '기분이 좋다'(보상)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 서서히 스마트폰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이런 중독의 안타까운 점은, 보상에 의해 누리게 된 어떤 감정이나 기분이 사실상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몇 번은 우울할 때 스마트폰을 하면서 기분을 풀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스마트폰은 결코 우리의 우울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공허해질 뿐.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중독이 됐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면 또 으레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